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장대비가 그치고 나서야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울음이 멈춘 걸 그제서야 알았을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너자이저.”
익숙한 말.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별명이었다.
그러고는 그의 큰 손이
말없이 연이의 머리 위에 얹혔다.
툭, 고생했다는 듯,
그 손에 깃든 따뜻함이
연이의 심장을 꾹 눌렀다.
비 냄새, 그의 온기,
그리고 손끝에 남은 감정.
그 모든 게 마치
“이제 끝났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지자
그는 손을 내려 연이의 볼을 양옆으로 살짝 늘렸다.
“워워, 이제 진짜 그만.”
장난스러운 말투에 연이도 피식 웃었다.
어느샌가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이 순간이 오래가길 바랐지만,
곧 다시 돌아올 현실이
서로의 분위기를 조금씩 어색하게 만들었다.
“…아.”
연이는 또다시 꿈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익숙한 악몽, 얼굴 없는 무언가에게 쫓기던 꿈.
항상 그런 불안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
바로 이 앞에 있는 이 사람만큼은
다르다고 느꼈다.
믿고 싶다.
기억은 잃었지만, 감정은 남았으니까.
그걸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