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현실화

4.내 인생에 무엇을 남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by 비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인생이 내일이라도 끝난다면,
나는 내 인생에 무엇을 남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성인이 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거다.


고등학생 때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고,

앞가림쯤은 저절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보내고 싶었던,

찬란하다고 믿었던 20대의 마지막은

하얀 나라, 병원에서 흘러갔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 인생에 ‘대운’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괜찮아, 아직 어리니까.”

스스로를 그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나는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전까지의 나는

마치 우물 안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는 개구리처럼

좁고 어두운 경계 안에서

그저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분명한 자각이 찾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이대로,

내 인생에 점 하나 찍고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작은 반란을 일으키기로 했다.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서.


그 반란의 시작은 ‘여행’이었다.


내가 선택한 첫 비행,

그리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걸으며 만난 풍경들.


병원 침대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그 여행들을 통해

내 시야와 마음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는 자유는 생겼다.


나에게 여행은
도망이 아니라
살아보려는 시도였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끝까지
‘살아보려는 시도’를 해왔고,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무엇인가를 남겼다고
조심스럽게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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