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았을 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구슬프고 무거우면서도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3시간이었다.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먼저 읽고 관람했지만 공연은 각색된 부분이 많아 생각보다 낯선 이야기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19세기 유럽,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지 않는 병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던 중 신체접합술에 능한 의사, 앙리 뒤프레를 만나고 그는 빅터의 신념에 감명받아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친구가 된다. 종전으로 연구실이 폐쇄되자 둘은 빅터의 고향 제네바로 돌아와 프랑켄슈타인 성에서 실험을 계속한다. 실험 중 사고가 하나 발생하지만 빅터는 결국 생명 창조에 성공한다. 그러나 창조된 괴물은 빅터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나머지는 생략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캐릭터가 끌고 가는 극이었다. 뮤지컬마다 이 넘버를 보여주려고 만들었구나, 또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구나 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 뮤지컬은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막은 빅터, 2막은 괴물의 분량이 가장 많았지만 전체적인 주인공은 뮤지컬의 제목을 차지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느꼈다. 극이 빅터의 심리를 가장 자세히 보여주고 괴물의 이야기도 결국 빅터에게 돌아온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갔지만 어머니가 죽은 날부터 어린 시절에 머물러 버린, 안타까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절하게 울며 노래하는 모습은 내가 눈보라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게 했다.
캐릭터가 중요한 공연치고 넘버가 가지는 힘이 강력하다. 이미 잘 알려진 넘버들이 대부분이고 가창력이 엄청난 배우들의 목소리로 듣다 보니 마음은 아프지만 귀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로 희망찬 분위기와 야망 가득한 모습으로 부르는 넘버는 1막에, 구슬프고 외로운 넘버들은 2막에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넘버에 가사로, 또는 선율로 절망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웅장한 넘버도 많았다. 특히 앙리가 감옥에서 부르는 '너의 꿈속에서'는 작은 앙리를 거인처럼 보이게 하고, 마지막에 홀로 남겨진 빅터가 부르는 넘버는 무대에 혼자 남겨진 그가 누구보다 작아 보이게 한다. 술집에서 부르는 '한잔의 술에 인생을 담아'도 재미있다. 거의 유일하게 흥이 나는 넘버인 데다 배우들의 춤사위를 감상할 수 있다.
1인 2역 캐스팅인 독특한 극이기 때문에 주로 1막 동안 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2막에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다 보니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는 그대로임에도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신선한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의 역할이 배우의 역량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공연 한번 하면 진이 다 빠질 것으로 보인다. 노래는 음이 널뛰기를 하는 데다 가슴 찢어지게 우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 번은 민우혁, 박은태 페어로 한 번은 전동석, 박은태 페어로 관람했는데 두 번 모두 정말 좋았다. 모두 가창력과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들이라 행복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한 배우가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을 한 극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를 보러 가는 분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연출은 영상을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괴물의 눈이나 눈보라 등 다양한 요소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띄었다. 또 화려하지만 마냥 밝은 톤의 색은 사용하지 않는 의상과 소품도 어두운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어른이 된 빅터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바라보는 식의 연출은 그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괴물과 빅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꼭 괴물이 빅터보다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이 창조해 낸 생명을 한 순간도 통제하지 못하는 빅터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빅터는 자신이 생명을 창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욕심에 휩싸여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도 외면하며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달린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자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도 지지 않고 도망쳐 결국 그 대가가 빅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화려한 볼거리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넘버로 조금은 가려져 있지만 이 뮤지컬은 인간의 욕심과 그 욕심이 불러온 재앙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한 대가가 얼마나 크게 돌아오는지 빅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인류에게 필요한 메시지이다.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게 메리 셸리가 이야기를 쓰면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더 들어맞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기 편한,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끝에 많은 질문을 남긴다. 여운이 남는 넘버와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꼭 봐야 할 뮤지컬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금세 반할 만한 뮤지컬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관람하면 이야기를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