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나주평야-바바리-치와와-'처럼 들리는 오프닝 가사로 이미 유명한 라이온 킹. 바로 첫 장면부터 프라이드 록에 온 듯한 착시를 일으키며 마법사가 만든 게 아닐까 의문이 드는 그런 뮤지컬이다.
태양과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뮤지컬.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라이온 킹>은 벌써 세 번째 관람하는 것인데 매번 보기 전에는 '그렇게 멋졌던가' 싶지만 첫 번째 넘버가 시작하자마자 '역시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라이온 킹>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멋진 공연이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대부분의 내용이 원작 애니메이션 영화와 유사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공연만큼 연출이 큰 역할을 한 공연은 보지 못했다. 다양한 동물들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수사자들은 위엄 있는 헤드피스와 분장, 암사자들은 기품 있는 의상과 춤으로 특징을 살려준다. 등장인물...이 아니라 등장하는 동물들의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에 맞게 다른 색 조합을 사용한 것이 돋보였다. 예를 들어 존경받는 왕인 무파사는 밝고 강렬한 노랑에 옅은 갈색 빛을 더한 분장을 사용하지만 악역인 스카는 어두운 갈색과 고동색의 조합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캐릭터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역할도 크다.
다양한 동물뿐 아니라 풀이나 물, 떠오르는 해처럼 초원을 표현한 요소들도 창의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공연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도록 표현되어 있다. 특히 천을 다양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과 가뭄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저수지를 멋들어지게 보여준다. 빛도 인상적으로 사용해 <라이온 킹>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제대로 재현해 냈다. 아프리카만의 분위기를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배우들의 분장과 의상, 그리고 배경의 연출에서 정말 잘 보인다.
배우들도 모두 아프리카계 배우들로 캐스팅한 것이 잘 어울리고 좋았다. 배우들은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면 저렇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단단한 노래 실력을 뽐냈다. 나는 심바의 심리를 가장 잘 보여줘서인지 심바의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심바, 무파사, 날라, 스카 정도가 가장 분량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이외의 캐릭터들도 각자의 색과 매력이 넘친다. 자주와 티몬은 특히 눈에 띄게 재미있고 잘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어린 심바와 날라 조차도 귀여운 실력자들이었다. 앞으로도 백인 이외 인종인 배우들이 더 주목받을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
스토리와 넘버도 잘 짜여있다. 스토리는 애니메이션에서 접한 내용이 대부분인데도 뮤지컬 만의 연출 방식이 재미있어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애초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되며 과거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좋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멋진 대사로 감동을 주고 때로는 배꼽을 잡는 대사로 웃음을 준다. 아이들도 많이 보는 공연임을 감안한 것인지 영어 대사들이 어렵지 않았다. 번역이 대체적으로 잘 되어있는 것 같긴 했지만(자막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역시 영어로 해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유희는 바뀌어서 약간 아쉬운 감이 있었다. 중간중간 아리랑이나 국제시장 같이 한국적인 요소들이 귀엽게 등장하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넘버는 역시 시작과 동시에 강렬하게 흘러나오는 'Circle of Life'가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동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데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정말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아기 심바를 들어 올리는 부분에서는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뉴욕에서 관람했을 때에 비해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The Lion Sleeps Tonight'와 'Hakuna Matata',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같이 익숙한 넘버들도 좋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 가장 깊이 박힌 곡은 'He Lives In You'였다. 어린 심바에게 무파사가 들려주는 노래인데 다 큰 심바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왕의 자리를 되찾을 용기를 얻을 때 다시 등장한다. 처음에는 선율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심바가 'He lives in me!'라고 외치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전체적으로 뜨거운 열정과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 찬 공연이었다. 어린아이들도 어른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관람하고 싶은 뮤지컬이다. 오랜만에 즐거웠던 '프라이드 록'으로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