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역시 시작은 이 뮤지컬 이어야 한다. 내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준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 내가 초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본 뮤지컬이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기까지도 그날의 경험은 생생하다.
배우가 누구인지, 무슨 이야기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약간의 기대감에 부풀어 공연장 좌석에 앉았었다. 시작의 어두운 분위기와 기괴한 앙상블의 춤에 조금은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하필 농담 한마디 없는 성스루 뮤지컬이어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가 '대성당들의 시대'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다'라는 소절이 귀에 닿는 순간 심장에서 발끝까지 번개에 맞은 듯한 짜릿함이 울려 퍼졌다. 공연 내내 오케스트라의 선율보다 크게 울렸던 내 심장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생각했다. "이게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구나". 슬픔인지 기쁨인지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뜨거움이 온몸을 감싸 안는 것. 그게 뮤지컬의 첫인상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공연이다. 그날에 대해선, 아는 것 하나 없이,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혹시 얼마나 마법 같은 공연이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성스루, 그러니까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인 만큼 미리 줄거리나 하이라이트 넘버를 알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뮤지컬은 내가 그동안 책과 영화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지만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세 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내가 울고, 웃고, 감동하게 만들었고 제4의 벽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같았다. 내 눈앞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이나 나니아로 가는 옷장보다도 신비로운 세계가. 다시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대전에 공연이 찾아올 때마다 엄마와 함께 관람하러 갔고 결국 이제는 공연을 위해 직접 서울에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빌리 엘리어트의 <전기가 되어>를 들으며 생각했다. 빌리가 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그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내가 뮤지컬을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경험이겠구나. 뮤지컬은 내 삶을 복잡하게 관통해서, 어느 날은 위로, 어느 날은 힘, 또 어떤 하루는 깨달음으로 찾아왔고, 평생 놓을 수 없는 사랑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길 꿈꾼 적도 있고 만들거나 연출하고 싶었던 때도 있으나 어느 길도 감히 도전하지는 못했다. 이대로 잠들기엔 너무 뜨거운 열정을 어딘가에 쏟아부어 이 글들을 쓴다. 내 불씨가 누군가에게 옮겨 붙어 또 다른 행복을 낳았으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