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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12. 2023

첫날 밤은 항상 후회의 밤

래브라도 리트리버란 이런 친구들이구나

드르륵. 덜컹덜컹.

차고 문이 열리고 미니밴에서 내리자 오래된 고무와 먼지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어둑어둑해진 차고 안을 작은 형광등 하나가 열을 다해 밝히고, 호스트 가족은 분주히 가방을 내리고 짐을 챙겼다. 제니가 먼저 뒷문으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을 올라 하얀 문을 벌컥 열었다. 따라오라는 손짓에 천천히 들어가자 큰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틀면 넓은 세모 모양의 부엌과 천장이 높은 거실이 붙어 있다. 부엌 앞에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을 지나치면 토미의 방과 작은 화장실, 손님방이 있다. 자연스럽게 신발을 신고 집안을 걷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물론 티내지는 않고 내집처럼 자연스러운 척 했다.

"Um... 물은 여기서 마시면 되고 케이티랑 네 방은 지하실에 있어."

제니는 친절하게 집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다 제니가 케이티에게 해서는 안 될 한마디를 했다.

"이제 개들 좀 내보내줘, 케이티"


난, 개를 정말 무서워했다. 뛰는 건 죽어도 싫은 내가 공원에서 개가 다가오는 순간 우사인 볼트 만한 스피드로 뛰어 엄마 품으로 날아 들어간 사례만 봐도 내가 얼마나 개를 무서워하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호스트를 구하기 어려우니 일단 대형견이 두 마리 있다는 소식에도 오케이를 한 것인데, 긴장한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케이티가 계단을 내려가기 무섭게 철창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초 뒤에 들려오는 개 두 마리의 발소리는, 도저히 집에서 키우는 개라고 믿어지지 않는, 야생의 소리와도 같았다.

집 나갈까...?


지금이야 그 친구들이 많이 신이 날 경우, 약간 과격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의 나는 치타 앞에 놓인 가젤이 된 기분이었다. 곧이어 엄청난 속도로 랩, 그러니까 래브라도 리트리버 둘이 뛰어올라와 내게 돌진했다. 냄새를 맡거나 내 주변을 뺑뺑 도는 정도로, 생각보다는 점잖은 첫만남이었다. 아, 몸통 박치기는 빼고. 머리가 울리게 짖어대던 것도 빼고. 음... 기억이 미화된 것 같기도 하다. 노란 친구 하나와 초콜릿 색 친구 하나였는데, 시도때도 없이 치대는 이 둘 때문에 한동안 팔짱을 끼고 다녔다.

카이(왼쪽)와 니아(오른쪽)



조금 격한 인사가 끝나고 이미 늦은 시간인 만큼, 모두 방으로 향했다. 케이티의 방은 내 방과 마주보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방문을 열자 분홍빛 벽지에 섬세하게 꾸며진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베개는 열 명이 베도 될 만큼 많았고 아이보리 색 옷장은 내 것의 두 배는 되게 넓었다.


짐은 조금만 풀었는데도 한 시가 넘어 침대에 누웠다. 물론 배게는 몇 개 빼고 옷장 구석에 올려놓았다. 불을 끄고 알람을 오분 간격으로 다섯 개 맞췄다. 절대 다음 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늦으면 안되니까.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금방 잠이 들었다.



오래 걸어온 길의 끝에 서 있다고, 드디어 실감한 오늘.

그 다음에 놓인 새 길 위에서 마주할 정체 모를 것들이 두려워서

아니, 지금껏 걸어온 발걸음이 사라질까 무서워서

아니, 그 시간에 담은 의미가 퇴색될까 떨려서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발도장이 찍힌 흔적만을 하염없이 바라봐왔다. 그 길에 쓰인 이야기가 이제는 내 일부라는 믿음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한 발짝 내딛으며, 어느새 새로운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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