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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13. 2023

어디서든 새 학기는 싫어

저 북한 사람 아니라고요

시차 적응이란 게 없는 인간이라서 다음 날 아침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레트리버 두 마리가 부러질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하루 봤다고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제니는 같은 학교의 유치원 선생님이라 먼저 출근하고, 앤드류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큰 접시에 스크램블 에그와 딸기잼 바른 토스트를 얹어 주는데 케이티가 옆에서, "헐, 아빠 지우 왔다고 이런 것도 해줘?"

평소엔 안 해주나 보다.


내내 어색한 공기가 흘러서 괜히 개들이나 쳐다보다 아침을 먹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돌리니 노란 레트리버, 카이의 얼굴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잠깐... 응?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꽤 높은 카운터에서 밥을 먹는데도 가볍게 점프해서 내 접시를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악어의 날렵함과 멍멍이의 간절한 눈빛이 합체된 모양새였다. 대형견이란 쉽지 않구나. 


케이티와 집을 나서며 조금 걱정했다. 학생이 운전하는 차는 처음 타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하게 덜컹대는 회색 니산 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덜컹거림은 차가 수명을 다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케이티의 미숙한 운전 솜씨 탓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 은 아니지, 내가 계속 타야 되는데.



미국 사립학교들 중에는 K-12라고 해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붙어있는 규모가 작은 학교가 많다. 그중 9에서 12학년까지가 고등학교라고 한다. 한국의 중3이 미국의 고1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10학년, 한국으로 따지자면 고1로 입학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많은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서로 알거나 친한 무리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고등학교로 들어왔다 해도 나는 일 년이 늦었다는 것이다. 친구를 만들거나 무리에 끼기 애매한 조건이다. 


최대한 당당한 척하며 교문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작게 총 금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기껏해야 뛰지 마세요였는데, 역시 미국은 스케일이 다르다. 미리 받은 시간표와 지도가 있었지만 길치인 나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하루 종일 케이티가 교실 앞에 데려다 놓듯이 해야 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매번 웃으며 알려 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시간표는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일단 학교마다 차이가 크다. 블록 시간표인 경우도, 한국과 비슷한 경우도 있는데, 우리 학교는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시간표였다. 1st hour부터 7th hour까지, 그러니까 1-7교시가 있는데, 몇 교시에 무슨 과목을 듣는지는 애들마다 다르다. 게다가 시간표를 짤 때, 학생들이 직접 선택하는 과목이 대부분이라 같은 학년이라 해도 비슷한 일이 잘 없다. 하루에 6교시를 듣고 무슨 날이냐에 따라 한 과목씩 빠지고, 그 와중에 순서도 자주 바뀌어서 시간표를 항상 확인하고 다닌다.


내 1교시는 프랑스어였다. 모든 새 학기 첫 수업이 그렇듯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이름하고 한국인이라는 것만 말했던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서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첫 수업은 끝났다. 놀라운 건, Korea에서 왔다고만 하는 경우, 많이들 "South or North?"하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속으로, '아마 여러분은 살면서 북한 사람을 볼 일이 없을 거예요'라고 생각하고, "South Korea"라고 답해주었다. 


2교시는 경제 수업. 10학년 필수 과목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동그란 테이블 여러 개가 보였다. 한국에서도 싫어하던 모둠 수업이라니. 아직 2교시인데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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