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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14. 2023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요

진심은 어디서든 통한다

순식간에 2교시 경제가 지나갔다. 학교에서 나눠준 패드가 낯설어서 어리바리하게 옆자리 남학생에게 도움을 받고 빠른 속도로 말을 때려박으시는 선생님께 적응하려다 50분이 날아갔다. 화학 수업도 예체능 수업도 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영어에 익숙해지려다 지나가버렸다. 애들과 친해지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도 어렵다. 학생들은 발음을 정확히 하지도 않을뿐더러 속사포로 말하기 때문에 어쩌다 누가 말을 걸어오면 진땀이 났다. 그래도 대화에 많이 참여하려는 시도는 해봤으니 만족했다.


내가 제일 기대하고 걱정했던 영어 수업 시간은, 영어답게 자기소개글을 짧게 써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시간이 첫날 자기소개였는데 혹시 나가 역시나였다. 함께 정한 주어진 키워드 몇 가지가 꼭 들어가야 했다. 키워드는 좋아하는 음식, 취미, 별자리, 발 사이즈 등이었다. 한참 고민하다 역시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왜 이곳에 왔는지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던 글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시간 안에 겨우 다 쓰고 돌아가며 발표를 시작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발표는 내 심장 박동이 덮어버리는 바람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슴이 도망가려는 것처럼 세게 뛰는 상태에서 내 차례가 왔다. 


"제 이름은 Jiwoo Lee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사랑했어요.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과 사랑에 빠졌고 나중에는 책 읽는 게 취미가 되었어요. 좀 더 커서는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죠.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향한 문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니 제 이야기도 하고 싶더라고요. English로 그 이야기를 한다면 세상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Kimchi fried rice,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오게 되었습니다. 막상 도착하니, 여기선 발 사이즈를 말하는 단위도, 내 별자리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게 제 dream이니까, 더 큰 꿈을 향해 가는 길이니까 매일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발표를 끝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는데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망했다 싶었다. 귀는 새빨개지고 눈물이 조금씩 고였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 조그만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서 반 전체로 퍼졌다.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솔직한 이야기 잘 들었어요. 앞으로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대할게."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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