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기유학의 빛과 그림자
뭐 어디든 그렇겠지만 미국은 특히 학교마다 분위기나 교육 방식의 차이가 크다. 미국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놀다가 대학교에서 공부한다는 말은 아무에게나 현실이 아니다. 공립 학교는 정말 공부를 안 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학교는 사립이고, 대학 준비에 특화된 곳이어서 모든 과목의 선생님들이 매일 밤 과제를 내주셨다. 쉬운 날도 있었지만, 꽤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유학생인 만큼 밤 늦게까지 숙제를 하곤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게 된 이후로 나는 두 교육 방식에 대해 더 신중히 말하게 되었다. 직접 경험해 본 만큼 장단점을 확실하게 느꼈고, 미국의 방식을 무조건 칭찬하기에는 그곳의 그림자도 크기 때문이었다.
가자마자 먼저 보인 특징은 학생들의 독립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는 일이 거의 없고, 부모님도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무관심하다고 보일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름방학에 한국에 들어와 밤에 산책을 나갔는데,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하도 많아서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일이 전혀 없으니 까맣게 잊은 것이다. 게다가 시간표를 짤 때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같은 학년이라도 관심사나 능력에 따라서 전혀 다른 과목을 들을 수도 있다.
코리안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심해 보이거나 자유롭고 행복해 보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기댈 곳이 없다는 말도 된다.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손 내밀어 줄 사람은 많은데, 손을 잡고 이끌어 가줄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가는 길은 내가 개척해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의존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좋은 환경이었지만, 많이 부담스럽고 외로운 방법이기도 했다.
게다가 공부가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시간 관리를 하는 능력, 모르는 부분을 알고 도움을 청할 용기,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성실성 등 필요한 것이 많다. 미국의 아이들 중에도 그런 공부 방식으로 충분히 훈련하지 못한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나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했지만 익숙해지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또한 균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예체능 수업이나 학원은 줄고 국영수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국은 학생이 균형잡힌 삶을 사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제니는 전체적으로 아이들에게 평균 이상의 공부를 강요하는 편이 아니어서인지, 내가 살면서 너무 많이 공부한다고 한 소리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기말 시험 이틀 전에 열심히 벼락치기 식의 시험공부를 하는데, 자신이 본 중 가장 많이 공부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표현하면 내가 정말 공부만 하고 산 줄 알 텐데, 난 당시에 이렇게 공부를 안 하고 살아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스포츠나 클럽 같은 정식 수업이 아닌 활동들도 하나 이상은 기본으로 참여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공부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드는데도, 재미있다며 도전해보라고 주변에서 추천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다양한 도전을 한다.
한 가지 정말 신기한 것은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기준에 따른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학교생활을 하는데, 그들에게 학교 공부는 삶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더 노력하면 그 이상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최고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면 쿨하게 받아들였다.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열려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각자 가려는 길이 다양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길이라도 응원이 먼저 나온다. 개인주의적인 성향 탓일수도 있지만 딱딱 정해진 앞날의 틀이 잘 보이지 않고,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많이 떨리는 일이다.
미국 조기유학을 떠났다고 밝히면, 많은 분들이 한국 같은 학업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겠다고 하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같은' 스트레스는 아니다. 대신 다른 고민과 노력으로 일상을 가득 채운다. 내가 한국에서의 현실을 도피하려고 떠난 것인지, 나와 맞는 시스템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떠난 건지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최대한 나 자신을 찾고 확신을 가지려고 발버둥쳤다. 나와 똑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신중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무엇을 위해 떠나려 하는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찾고자, 자신이 놓인 현실이 버거워서 회피하고 싶은 거라면,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천국이 아니라, 미국을 찾아 가는 사람들은 환영이다. Welcome to the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