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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19. 2023

9월, 소로우를 만나다

인생이란 개연성 있는 것

미국 학교에 다니는 상상을 하면 가장 기대되었던 수업이 영어 수업이었다. 한국의 교육과정과는 조금 동떨어진 방식으로 영어를 배운 덕에 학교 영어가 어려웠던 적은 없지만, 재미있었던 적도 없다. 고등학교를 알아볼 때 국제고나 외고를 생각한 것도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와 수업 안내가 아닌, 진짜 진도를 나가는, 첫 번째 영어 시간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의 10학년 영어 선생님은 조금 독특한 분이었다. 내가 입학한 해에 처음 들어오신 선생님이셨고, 첫날부터 괴짜, 또는 역대급으로 이상한 분이라고 소문이 났다. 키가 크신 남자 선생님인데 애매한 웨이브가 섞인 단발머리에, 거의 매일 비슷한 회색 셔츠와 남색 슬랙스를 입는 분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Advising이라고, 항상 교실을 돌아다니고 각자 수업 시간도 다른 미국 학생들이 잠깐 모이는 시간, 반 친구들이 모이는 시간이 있었다. 긴 시간은 아니어도 매일 보는 친구들이 되는데, 내 Advising 선생님이 그 영어 선생님이었다.


첫 Advising 시간, 핸드폰 메모장에 질문을 잔뜩 적어 선생님께 다가갔다. 흔쾌히 질문하라 하시길래

"Um, where's the chemistry classroom?" 화학 교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오, 좋은 질문이야. 나도 전혀 모르겠는걸?"

....

"그럼, 점심시간 시작이 언젠가요?"

"Hmm"

그러시곤 옆에 앉은 친구에게 되물으시고 결국 그 친구가 알려주었다.

"So... 질문은 그냥 다른 애들한테 할까요?"

"Good idea!"

꽤나 어이가 없었다. 뭐, 첫인상은 좀 그랬어도 영어 시간엔 편견을 가지지 않고 집중하려고 했다. 막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자 얘들아, 우리가 처음으로 읽을 책은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이야. 너무 재밌겠지?"

Sarcasm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니까 반어법이라는 걸 아는데도, 그 순간엔 좀 열받았다. 한국에서 본 적은 있었다. 그냥 '저런 책은 대학 가서나 읽으려나'라고 생각했을 뿐. 멍하니 현실 자각을 못 하고 있는데, 적어도 200쪽은 넘어 보이는 책을 나눠주셨다. 제목부터 어질어질 한 Transcendentalism Collection(=초월주의 수필 모음집)이었다. 좋은 소식은, 모음집이기 때문에 그 전체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 나쁜 소식은 그중 여러 개를 할 거라서 학년 말에 보면 어차피 거의 다 읽을 거라는 사실. 그렇게 초월주의로 미국 영어 수업의 스타트를 끊으며,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먼저 읽은 <시민 불복종>은 다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학기 말에 한국어로 찾아서 조금 읽어보니 모국어로도 이해가 다 안 됐다. 이런... 요령 부릴 여유가 없어서 무식하게 읽고 또 읽으며 어떻게든 머리에 집어넣으려 애썼는데, 신기하게 그 덕분에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주 뒤에 과제로 나온 '내 삶에서 찾는 시민 불복종' 에세이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을 정도로 발전하기도 했다.


소로우와 작별을 고한다고 신났던 그때, 선생님은 다음으로 소로우의 <Walden>을 읽는다고 해맑게 설명해 주셨다. 하하하, 참 신나네요. 다행히 월든은 시민 불복종에 비하면 읽기가 편했다. 그래봤자 서울대보단 연세대가 가기 쉽지 하는 정도였지만.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사회에서 떨어져 월든 호수 옆, 작은 오두막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소로우는 그 과정을 하나의 실험이라 불렀고, 숲 속을 걸어 월든 호수에 도착하는 것처럼 복잡한 생각의 늪을 거쳐 내면의 평안을 얻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문학적인 것보단 과학적인 실험의 성격이 잘 느껴지는 에세이지만, 내 마음은 그것의 문학적 가치에 끌렸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보았을 때 후회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다. 물질적 풍요는 마음의 풍요에 비할 수 없다고,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고 주장했다. 소로우는 자연과 단둘이 나누는 담소가 사회 속의 의사소통보다 가치 있다며 고독을 추구한 사람인만큼, 자연을 탐구한 내용이 꽤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가 새들의 노래를 듣고, 호수 물결에 햇빛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푸르른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들의 서술은 정말 여러 번 읽었다. 내가 아침 햇살에 산을 타며 느꼈던 것들과 놀랍도록 일치했기 때문이다. 소로우의 감탄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런 아름다움은 백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를 한 발짝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월든이 깊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머리보다 마음의 기억력이 더 좋은 모양이다.


<월든>을 수업 시간에 함께 읽을 당시, 날씨가 무척 화창하고 창문 바깥 풍경은 한 폭의 로코코풍 그림 같았다. 한국이었다면 쓱 보고 말았을지 모르나, 반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서 읽자며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원래 그럴 계획인데?"하고 다 함께 학교 앞마당에서 월든을 읽었다. 평지나 밭만 가득한 캔자스의 아이들이 월든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다가도, 그 옅은 초록빛의 춤을 감상하자니 내 걱정은 오만일 뿐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누군가를 보며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한 나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다.

비록 학교에서 퀴즈의 답을 맞히기 위해 이 정도의 몰입은 필요 없지만, 이런 경험 덕에 진정 내가 집을 떠나온 이유를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내게 <월든>이 다른 친구들보다 깊이 남은 이유는 내가 매일 아침 뒷산에 오르며 몸에 새겨진 아름다움 때문이겠지. 경험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돌아보면 그 연결고리들이 개연성으로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개연성 있는 인생이, 의미를 아는 인생이, 소로우가 말한 진정한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말하니 가자마자 아름다운 유학 생활을 보낸 것 같지만, 실상은 아침마다 '이번 시험은 망했다'는 생각을 하며 헐레벌떡 뛰어다녔었다. 아침에 다섯 개 알람을 다 넘기고 자는 바람에 제니가 전화하면 3분 만에 후다닥 준비하기도 했다. 9월은 어느새 한 주 밖에 남지 않았고, 엄청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로망, 홈커밍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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