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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20. 2023

미국 고딩의 로망, 홈커밍 댄스

9월의 하이라이트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다루는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홈커밍 댄스. 학교의 졸업생들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돌아온다'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은 Homecoming은,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파티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주로 Homecoming week가 있는데, 그 해의 첫 풋볼 게임이 있는 주를 일컫는다. 그 주 내내 매일 독특한 행사가 있지만, 학생들이 참여하는 큰 이벤트는 홈커밍 파티와 옷 입기 대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년마다 다른 콘셉트가 주어진다. 

우리 학교의 10학년은 월요일엔 파란색, 화요일엔 핼러윈, 수요일엔 해적 등등이 주어졌다. 11학년은 초록색, 독립기념일 등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 조회와 비슷한 Morning meeting 시간에 그 학년에서 가장 잘 분장한 학생 몇을 뽑아 순위를 정한다. 1등 한다고 상품은 없었던 것 같고 사소한 명예 같은 것을 얻었다. 10학년 중, 핼러윈 분장을 하는 날에 얼굴을 다 덮는 늙은이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온 친구가 1등을 했었다. 그 외에도 가짜 새를 어깨에 얹고 온 애, 거대한 종이봉투만 입고 온 애, 온몸을 위키드처럼 진한 초록색으로 칠한 애 같이 기상천외한 의상이 많았다. 그때 새삼스레 내가 미국에 산다는 걸 실감했다. 


이렇게 한 주를 보내면 금요일에 시즌의 첫 풋볼 게임이 있다. 미국 학교에서 풋볼 게임이란 우리나라의 축제 같아서 꽤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모인다. 치어리딩 팀과 댄스 팀이 전 시즌에서 가장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학생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나는 합창단 소속이어서 미국 국가를 함께 부르게 되었는데, 다른 나라의 국가를 부르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우리 학교가 규모에 비해 풋볼을 잘하는 편이어서 홈커밍 게임은 아주 제대로 이겼고, 다음 날 있을 홈커밍 댄스의 기대감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이 댄스, 그러니까 첫 파티다. 기존 커플은 당연히 함께 가지만, 이 댄스는 새 커플을 만드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많은 남자애들이 큰 종이에 "Will you go to homecoming with me?"와 같은 맥락의 멘트를 써서 파트너 신청을 한다. 이게 사실상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때 신청 장면을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둘은 학년 말 까지도 잘 사귀었다. 그렇다고 신청하면 무조건 커플이 되는 것은 아니니 착각하면 안 된다. 파트너가 없으면 댄스에 못 가냐? 그럴 리 없다. 친구들 여러 명이 모여 가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 날은 모두가 한껏 꾸미고 올 첫 번째 기회다. 남자애들도 턱시도를 많이 입지만 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고, 여자애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날이다. 여자애들은 다들 드레스를 입는데, 이 드레스는 한번 입었던 것도 절대 안 되고, 다른 친구들과 겹쳐서도 안된다. 자신과 딱 맞는 드레스를 찾기 위해 인터넷, 백화점 할 것 없이 뒤진다. 내가 사립학교에 가서 친구들 대부분이 돈이 많았지만 호스트 가족 같은 경우는 그런 편이 아니라 Clearance section이라고 안 팔려서 할인해 주는 옷들을 많이 둘러봤다. 

그러던 중, 케이티의 언니가 입었던 초록색 드레스가 나와 어울릴 것 같다며 제니가 흔쾌히 빌려준 덕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케이티와 백, 구두, 액세서리를 보려고 그 후로도 많이 돌아다녀야 했다. 당일에는 적어도 3시간을 잡고 머리,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한다. 난 화장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제니가 거의 스타일리스트처럼 메이크오버 시켜주었다. 내 유학 메이트도 초대해서 그날 찍은 사진만 100장이 넘었을 것이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들과 파스타 레스토랑 앞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고 다시 사진 100장은 찍었다. 원래 홈커밍 전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한껏 꾸민 그대로 사진을 찍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다들 후드티나 맨투맨만 입고 다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 한 모습을 보니 어색했다. 그러고 나서야 댄스파티로 향했다.

학교 건물들 사이 광장을 꾸미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 둔 것이라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평소와 다른 친구들의 모습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다들 갑자기 취한 것처럼 텐션이 올라가더니 몇 십 명이 칼군무를 하질 않나, 막 소리를 지르며 뛰질 않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막춤 배틀이 붙은 것을 보며 '이것이 아메리칸 스피릿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재미있었다기보다 신기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홈커밍이라니,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홈커밍'을 맞이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댄스의 뜨거운 열기에 모두의 볼이 붉게 물들고 에너지가 넘쳐나자 기온이 꽤 낮은데도 더웠다. 화려한 드레스가 너무 얇아서인지, 내가 그들 사이에 완전히 녹아들 수 없다는 게 실감 나서인지 그 시끌벅적한 파티 속에서 가슴 한편이 시리기도 했다. 미국 땅에서 본 것 중 가장 반짝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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