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우 Jul 17. 2023

아메리카에서 만난 개성

에메랄드 시티에서 노란 벽돌 길 위로

미국 시골인 캔자스의 한 고등학교가 내게 준 충격을 빗대어 보자면, 에메랄드 시티에서 태어나 자란 한 아이가 초록 안경을 벗고 노란 벽돌 길을 따라나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온통 초록색인 세상 속에 살다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나섰더니, 무지개 빛깔의 세상이 내게 왔다. 그 길 위에서 겁 많은 사자도, 따뜻한 양철 나무꾼도, 똑똑한 허수아비도 만나면서, 그 이전의 나라는 사람이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아메리칸 고등학생들의 가장 신기한 점은 각자의 개성이 확실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하교 시간에 늦게 교문을 나서면 눈 앞의 광경이 개미 떼와 흡사했다. 우리 학교의 교복은 마이가 짙은 남색이었고 롱패딩은 거의 검은색이었다. 교실 안에선 항상 같은 것을 나누며 공감했고, 눈에 띄게 튀는 행동은 많이들 피했다. 


미국이라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완벽하게 녹아드는 친구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취향이나 스타일, 적어도 한 가지 만큼은 나만의 특별함이고 싶어한다. 아무도 모르는 밴드의 노래를 열성적으로 전파하는 친구도 있었고, 가방이 온통 뱃지와 핀으로 뒤덮인 친구도 있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패드의 뒷면이 깔끔한 경우도 드물 정도로 자기만의 것을 드러낸다. 심지어 한 축제에서는 형광 초록색의 모히칸 머리를 하고 검은 사슬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은 여학생도 보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아이들이 크게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좋아하는 것을 질문했을 때, 답이 즉각 나오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열정적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정말 큰 장점이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이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덕에 부담스럽지 않다. 뮤지컬이나 연극을 올릴 때, 누구도 비웃지 않는다.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노래하는 친구들을 위해 박수를 보낼 뿐. 


또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이 오랜 시간 동안 날 괴롭혔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지만, 초록색 세상에서 붉은 꽃 한 송이는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듯이, 나를 향한 눈초리의 의미가 무엇이든, 달가웠던 적은 없다. 그런데 튀지 않는 게 더 튀는 알록달록한 세계는,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편안했다. 




9월을 맞이할 쯤 나는, 그 세상의 규칙에 조금씩 적응하는 중이었다. 아직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후덥할 그때, 내 유학 메이트가 드디어 비자를 받게 되었다. 친구가 처음 학교에 나오는 날, 내가 더 긴장하고 교문 앞을 서성거리던 기억이 훤하다. 친구의 존재만으로도 익숙함이 한 방울 더해진 것 같이,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학교에서 공식 '선생님이 출석 부를 때 매번 멈칫하는 둘'이 되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9월이라 하면,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홈커밍 댄스.

이전 14화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