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무리, 9월의 손님
눈 깜짝할 새에 8월의 끝자락이 되었다. 캔자스 생활을 시작한 지 아직 2주 정도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많은 것들에 익숙해졌다. 픽업해 주러 온 호스트 엄마나 아빠의 "How was your day?"에는 "Good"이 아니라 부가 설명이 길게 붙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레트리버 두 마리와 살려면 밥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 새로 깨달은 것도 많았다.
기본만 해도 바쁘지만 욕심을 부려 테니스도 시도했다. 이 학교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플레이어로 인정받을 만한, 엄청난 재능을 발견했다. 대회 성적은 포기하고 운동할 겸, 스포츠도 경험할 겸 시작했는데, 의외로 친구를 만들기 좋았다. 테니스 연습 중에는 기껏 해봤자 오가는 대화가 "Hey", "That was great", 아님 "Sorry" 정도이기 때문에 입이 좀 쉴 수 있었다.
수학 수업은 일단 Algebra 2로 들어가지만 평가를 한번 보라는 말에 짧은 테스트를 봤다. 사실 수학 선생님이 워낙 좋은 분이셔서 내심 그대로 있었으면 했다. 테스트는 어렵지 않았지만 아직 배우지 않은 부분과 까먹은 부분이 많아서 '아 망했구나' 하고 홀가분히 나왔다. 다음 날, 수업시간에 잠시 불러내시더니 상급반인 Precalculus로 옮기란다. 물음표가 땡 하고 머리를 때렸다. 대체 왜지...? 아직도 그 테스트로 어떻게 반이 바뀌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확실히 내가 들어본 미국 고등학생 생활과는 달랐다. 하이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몰아치는 숙제, 과제, 시험에 서서히 파묻히고 있었다. 핑크빛 기류나 파티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우리 학교가 더 그런 편이긴 했지만, 모든 과목 선생님이 매일 숙제를 내주셨고 거의 모든 숙제와 과제물이 성적에 반영되었다. 그건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가지를 망친다고 성적이 바닥을 칠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시험이나 퀴즈가 한 과목당 일주일에 한 번쯤은 있어서 한상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코어 과목, 그러니까 꼭 들어야 하는 과목이 다섯 개라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시험이 하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중에 운동이나 클럽 같은 활동에도 참여하느라 시간 관리를 열심히 해도 밤늦게 잠에 들었다.
아, 여기서 말하는 밤늦게는 약 9시 이후로 밖에 인기척이 없는 미국 기준으로 늦은 시간이다. 대신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새나라의 바른생활 어린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도 해본 적 없는 11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기를 처음 실천했다. 물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계속 그러진 않았다.
정신없고 바쁜 몇 주가 지나가고 조금씩 생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9월이 다가올 때쯤, 드디어 내 유학 메이트의 비자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