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우 Aug 03. 2023

12월, 미국은 크리스마스에 미쳤다.

하루 늦은 크리스마스

제목 그대로, 미국은 크리스마스에 미쳤다. 한국에서도 12월에 접어들면 조금씩 캐럴이 들리고 붉은 장식들이 보이곤 했었는데, 미국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호스트 가족 식구들은 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순간, 거대한 트리 두 그루를 꺼냈다. 그 주말 내내 집 전체를 크리스마스나 겨울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 꾸며 두었다.


기말 시험이 모두 끝나면 방학식 같은 것도 없이 바로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여기서 함정은 딱 1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여름 방학이 두 달 조금 넘는 대신 겨울방학이 정말 순식간이다. 1학기의 마지막 날 저녁에 제니와 나는 두꺼운 레시피 책 한 권과 더 뚱뚱한 폴더 하나를 꺼내 놓고 핫초콜릿을 한잔씩 마시며 그 주 내내 만들어 먹을 특식과 디저트, 쿠키 레시피를 찾았다. 


다음 날, 우리 집은 쿠키 공장이 되었다. 약 5종류의 쿠키를 두 판씩 구웠더니 주방에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멍멍이 친구들은 하도 침을 흘려서 베란다에 격리되었다. 

화려한 트리 밑에는 색색의 선물 상자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숨기기 위해 별별 닌자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유일하게 산타 클로스를 기다리는 토미를 위해서는 다들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사실 진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 선물을 받으려 눈치껏 벌이는 이중 사기극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영화들을 내가 거의 본 적 없다는 비밀이 밝혀지자 약 3주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여주는 바람에 아주 이야기의 패턴을 외워 버릴 정도였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을 소개하듯 신이 난 가족들 앞에서, 그리고 <나 홀로 집에>가 얼마나 멋진 영화인지 설명하는 토미의 열정에, 익숙한 영화들을 볼 때도 처음인 것처럼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는 건 여기서만 슬쩍 고백한다. 


앤드류가 직업 특성상 복잡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는 탓에, 우리 집은 하루 늦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되었다.  제니의 엄마와 아빠 집에 각각 크리스마스이브, 당일에 찾아가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을 개봉하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우리의 크리스마스이브,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당일날, 가족들이 다 모여 아이싱과 사탕으로 슈거 쿠키를 꾸몄다. 그중, 토미의 선택을 받은 몇 개는 우유 한 잔과 함께 산타를 위해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다. 

물론 카이가 리본까지 달고 산타 클로스 행세를 했기 때문에 토미가 잠에 들자마자 쿠키들은 냉장고 위로 이사를 했다. 

다음 날 아침, 다크서클이 조금 내려온 제니와 앤드류가 집안의 아이들을 모두 깨웠다. 다들 초롱초롱 한 눈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꼭 어린아이들 같았다. 밖은 아직 흰 눈이 남아 있었고, 거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선물 증정식이 시작되었다. 

난 제니 부모님이 주신 선물까지 합하면 평생 받아본 적 없었던 많은 양의 선물을 받았다. 학교 로고 후드티, 슬리퍼, 소설책, 과자, 다이어리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는데, 그 양보다는 내가 정말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다. 

난 부모님께 부탁해서 제니, 앤드류, 케이티, 토미의 이름을 한글로 새긴 캡모자와 마스크팩을 준비했다. 정말 이름이 쓰여 있는지 의심하는 장난꾸러기들 때문에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마스크팩은 인기 폭발이었다. 강아지 친구 두 마리는 공을 왕창 선물 받고 하도 행복해서 꼬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선물이 다 지나가고 함께 시나몬롤, 스크램블 에그, 슈거 쿠키와 베이컨을 아침 식사로 나눠먹었다. 그날 바깥은 칼바람이 불도록 추웠지만, 내가 그 집에서 보낸 일 년 중 가장 따뜻한 하루였다. 온기가 흘러넘쳐 뜨거울 지경이었으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국은 크리스마스에 미쳤다. 그게 참 좋았다. 

이전 22화 <생쥐와 인간>, 그리고 내 아메리칸 드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