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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Aug 08. 2023

개와 초밥

도전, 그리고 또 도전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개를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원인불명의 개 공포증, 아니 사실상 동물 공포증에 시달리다, 의도치 않은 노출치료를 받게 되었다. 같은 집에 사는 노란 레트리버 카이, 초콜릿 레트리버 니아, 거기다 케이티 할아버지네서 키우는 검은 레트리버 새미, 그리고 종을 알 수 없는 할리와 렉시까지. 아, 잠시 동안만 함께했던 말티푸 파이퍼도 있다. 

카이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이 표정이 풍부하고 모든 사람과 단짝 친구인 것처럼 굴었다. 니아는 낯을 좀 가리지만 한번 쓰다듬기 시작하면 하도 좋아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호스트 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장 친해진 친구들 같기도 하다. 

처음엔 방문도 꼭 닫아놓고 손이 닿지 않게 팔짱까지 끼고 다녔었다. 이제는 사진첩에 개 한 마리 당 폴더가 하나씩 있고, 한국에서도 강아지를 보러 저녁 산책을 나갈 정도로 반려동물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내가 열심히 피해 다닌 또 한 가지는 초밥.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초밥을 맛본 이후로 그때의 낯선 식감과 맛이 싫어서 초밥은 무조건 거절이었다. 결국 열여섯이 될 때까지도 거의 먹어본 적이 없었다. 호스트 가족들과 봄방학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제니가 스시 보트를 주문했다. 초밥과 롤이 종류별로 나오는 애피타이저였는데, 나에게 하나를 권하길래 일단 받았다. 고민하다, '그냥 한번 먹어보지 뭐' 하고 입에 넣었다. 그날부터 나는 초밥을 잘 먹는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놀이 기구도 무서워하고,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부담스럽고, 동물이라면 다 질색이며, 초밥 말고도 못 먹는 음식 천지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낯선 곳에 혼자 가는 것도 싫고, 아는 사람이 없으면 뭐든 안 하는 것뿐 아니라 몸 쓰는 일이라면 거절이 기본이었다. 아마 다 나열하자면 한 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고, 다른 나라의 새로운 학교를 다니고, 작은 롤러코스터를 타 봤고, 자연스럽게 초밥을 먹으며, 카이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에 지원했다.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서 살았다. 




우리 고등학교에는 튜토리얼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수업 시작 전 40분, 수업이 다 끝나고 40분 동안 선생님들 모두 교실에 있고 학생들이 도움이 필요한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는 시간이다. 정말 좋은 방식인데, 모든 좋은 제도가 그렇듯 꼭 이용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모이는 날들은 시험 전날 정도. 그 이외에는 많은 교실이 비어 있었다. 

내가 새 학기를 시작했을 때, 정말 막막했다. 튜토리얼의 존재는 알았지만 선생님들께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성적을 잘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 그리고 전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희망으로 영어 선생님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좀 더 쉬웠고, 다섯 번째쯤 되자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제니와 함께 일찍 학교에 도착해 교실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날 도움이 필요한 과목 선생님을 찾아갔다. 

4월의 어느 날에는 화학 선생님 교실 앞 벤치에 앉아 선생님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놀라지도 않으시는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Hi"를 건네시고 난 "Good morning"하고 인사했다. 열쇠를 돌리시는 선생님 뒤로 영어 선생님이 지나가다 말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쌤, 요즘 얘가 뜸하다 했더니, 선생님이 데려가신 거였네요?"

"아이고 뭐 그렇게 됐네요."

"허허 참, 기다렸는데 며칠이나 얼굴도 안 비추고 너무하네."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날 보고 두 분 다 웃음을 터뜨리셨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약간 자신들을 괴롭히러 온 학교 지박령 같았을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나를 바꿔놓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두려움의 정체를 까 보면 별 거 아닐 때가 많다. 원인은 대게 무지 또는 오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것들,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나는 영어로 다섯 쪽짜리 에세이를 쓸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1200 단어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헀다.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할 수 없는 사람, 다른 나라 언어로 발표를 할 수 없는 사람, 미국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거나 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꿈을 이룰 수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 정말 나답지 않은 일들 앞에서 눈 딱 감고, '그냥 한번 해보자'하고 도전했다. 다 성공했냐고? 당연히 아니지. 그렇지만 도전의 결과는 성공 또는 성장이고, 난 둘 다 환영이다. 

기회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이런 순간들이다. 이때 잡지 않고서 기회가 자신을 외면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정말 바보 같은 태도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겠다. 


아직도 버섯 편식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중인 나는 갈 길이 멀지만, 생각보다는 멀리 왔다. 그렇게 내일도, 다음 주도, 내년도, 그리고 평생을 살아가면 언젠가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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