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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Aug 08. 2023

5월, 눈물 젖은 당근 케이크

드디어 한국으로

5월이 다가오면 미국 학교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학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1 학기말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는 2 학기말이지만, 이번엔 다른 점이 있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까맣게 잊고 있던 새에 어깨를 두드렸다. 귀국 날짜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이다. 5월 초부터 여행가방을 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출국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을 때쯤엔 옷을 캐리어에서 도로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방이 깨끗했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날 줄로만 알았는데,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꽤나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 자취를 깨닫는 순간부터 아프기 시작하는 미련함은 뭔지, 왜 자꾸만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지, 이해할 수 없는 건 많고 마음은 일렁였다. 




출국을 사흘 남겨 둔 날, 제니가 말을 꺼냈다. 

"너 생일이 6월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요?"

"생일파티 하고 갈래?"

난 생일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 네, 좋죠!"

그렇지만 이 가족을 좋아하니까.

"Okay!"

기대하라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제니의 눈빛에 왠지 뭉클해졌다.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고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결국 출국 전날, 케이티의 할아버지 집에 제니의 자매들까지 모여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테이블을 치운 뒤, 'Happy Birthday' 글자 모양의 초를 꽂고 예쁘게 꾸민 당근케이크를 내왔다. 커다란 쇼핑백도 두어 개 가져다 놓더니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Happy Birthday to you!"

얼굴은 새빨개지고 슬쩍 쇼핑백 안으로 숨을 궁리를 하는데, 케이티가 빨리 열어보라며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케이티는 보라색 슬리퍼, 토미는 컬러 볼펜 세트, 앤드류와 제니는 '작가 되는 법'이라는 책과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 목걸이는 은색에 작은 나침반과 지구본 모양의 참이 달려 있었다. 포장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전 세계가 너의 무대가 되기를.'

모두 한 번씩 꼭 안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제니를 끌어안으며 서로 말했다.

"I'll miss you."




나도 그냥 떠날 생각은 없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일부러 알람을 한참 전으로 설정했다. 평소에는 제니가 집을 나서기 10분 전에 전화를 해서 깨우곤 했는데도,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눈이 잘 떠졌다. 방에 도착한 첫날밤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며, 최선을 다해 그때 모습 그대로 정리를 했다. 침대에는 열 명이 베도 될 만큼 많은 베개를 놓고, 아이보리 색 옷장은 깨끗이 비웠다. 

침대 끄트머리에는 종이가방 세 개를 올렸다. 이미 커다란 테니스공을 하나씩 선물한 멍멍이 둘은 생략했다. 작은 분홍색 가방에는 케이티를 위한 액세서리와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 그리고 '최고의 호스트 자매가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쓰인 편지 한 장을 넣었다. 

가장 크고 화려한 가방은 꼭 토미 것이어야 했다. 크리스마스 때, 케이티가 언니에게 준 공룡 인형을 부러운 듯 쳐다보길래 선물은 그것, 편지에는 '나 이제 남동생 생겼다!'라고 써두었다. 길쭉한 가방에는 앤드류를 위한 불고기 소스 한 병, 제니를 위한 예쁜 물병 하나를 담았다. 그리고 편지에는 '가족이 되어 줘서 고마워요.' 케이티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초콜릿도 한 박스씩 준비했다. 


모든 것은 끝이 있음을 알 때 의미를 가진다. 난 자주 영원이란 착각 속에서 살다가, 꼭 이런 순간이 와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집에서 케이티, 토미와는 인사를 마쳤다. 캐리어가 보이면 누군가 떠난다는 걸 아는 카이와 니아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날 뚫어져라 바라보며 울었다. 제니와 앤드류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앤드류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앤드류가 맥주 원샷하는 법 보여줬다고 꼭 말해줄게요!"

진심이었는데 농담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공항에서 인사를 마친 유학 메이트와 나는, 게이트를 통과하고 얼마 안 있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캔자스 땅에서 날아오르는 그 순간, 익숙한 기체의 진동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그리움은 생각보다 진했다. 어느 쪽을 향하든 말이다. 

이제 다시 집으로, 엄마 아빠가 있는 우리 집으로 간다. 캔자스, 두 달 후에 보자. Goodbye,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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