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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Aug 08. 2023

노란 피부의 거꾸로 도로시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미국의 동화 중에는 <오즈의 마법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캔자스주에 사는 도로시라는 소녀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날려와 '오즈'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다. 먼치킨랜드의 난쟁이들은 에메랄드 시티라는 곳에 가면 오즈의 마법사가 도로시의 소원을 들어 줄 거라고 말한다. 도로시는 동쪽 마녀가 남긴 은구두를 신고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에메랄드 시티로 향한다.

그 길 위에서 똑똑한 허수아비도, 마음이 따뜻한 양철 나무꾼도, 용감한 사자도 만난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일행은 그가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도로시의 은구두가 마법 구두라는 것도. 그 구두를 이용해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거꾸로 도로시로 살게 된 소녀의 경험담이다.




노란 피부의 도로시는 약 하루 간의 긴 여정 끝에 캔자스에 도착했다. 그곳은 도로시가 살던 곳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익숙한 것 하나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곳의 주민들은 다들 키가 커서 거인들 같았다. 피부색은 하얗기도, 검기도, 구릿빛이기도 했다. 다들 조그맣고 피부색도 다른 도로시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도로시는 그곳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것을 찾으러 갔다. 사람들은 그것을 찾으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노란 벽돌로 이루어진 학교에 갔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으려고 열심히 걷다 보니 신기한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이 따뜻한 초록 눈의 가족을 만났고, 하얀 피부의 사자가 용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평생 쓰고 있었던 초록색 안경이 산산조각 나며 형형색색의 세계를 다시 만났다.

소녀는 그 세계에 오래 머물렀다.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하는 삶을 이루어 주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없다는 것. 대신 도로시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가 줄곧 가지고 있었던 '꿈'이라는 무언가, 그것이 도로시가 찾고 있던 나침반이었다.


거꾸로 도로시는 굳게 믿고 있었던 세상의 규칙들이 부서지는 순간들을 이전에도 마주했다. 그러나 외면하고 피했다. 두려웠다. 그가 기대고 핑계 댈 수 있는 벽이 무너지는 것이 말이다. 그 너머에 얼마나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 파편들을 긁어모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자 했다. 캔자스에서 보낸 시간은 그의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침내 눈을 뜨고 벽을 무너뜨릴 힘을 길렀을 때, 소녀가 마주한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 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국에서 보낸 10학년의 해는 이랬다. 초록 눈을 가진 호스트 패밀리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사자 같은 머리를 한 영어 선생님은 영어보다 인생을 더 많이 가르치셨다. 작은 세계를 떠나기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던 난, 조금씩이라도 날개를 펴보기로 했다.

평범한 유학일기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너무 평범하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이 시행착오 가득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구에겐 위로가, 또 다른 누구에게는 색안경을 부수는 일이 되기를 바라며 일 년의 기록을 마친다. 에필로그지만, 엔딩은 아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니까. 아직 쓰이지 않은, 긴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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