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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Aug 07. 2023

이방인으로서 떠나는 여행

한국 사람이 미국 가족과 멕시코로 향하다

유학이라는 것은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을 감수하는 일이다. 2월 정도 되었을 때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는 운이 따라 주어서 내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 유학 메이트를 얻었지만, 보통의 유학생이라면 고립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공감할 수도 없고, 친구들과 같은 생활을 나눌 수 없으며, 미국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서를 이해받을 수 없는 데다, 다른 유학생들과도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다. 그러니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난 사람이 일반적인 공감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렇게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어떤 면에선 이방인인 나는, 자칫하면 외로움에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로움과 같이 차가운 감정들이야말로 나눌수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들이어서, 친구와 나는 서로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방인의 신분으로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신기한 경험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호스트 가족과 멕시코 근처 섬들인, 온두라스, 벨리즈, 코수멜로 크루즈 여행을 떠난 것이다. 


미국의 봄 방학은 3월 중순에 딱 한 주 정도 된다. 그리고 이때, 많은 가족들이 여행을 떠난다. 11월쯤, 호스트 엄마, 아빠가 봄 방학 여행 이야기를 꺼낼 때 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신이 난 제니와 앤드류가 나와 케이티, 토미를 모아 놓고 선언했다. 

"자 얘들아, 우리 봄 방학 때 크루즈 여행 갈 거야!" 

토미와 케이티가 소리를 내지르며 기뻐하는 가운데서 나는 크루즈라면 도대체 얼마나 하는지 검색해 보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제니가 옆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너도 당연히 같이 가는 거 알고 있지?"

"아, 네. 그... 크루즈라면 일 인당 얼마예요?"

"으이그, 이럴 줄 알았어. 우리가 내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따라오기나 해."

내가 내겠다고 설득하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까먹었다며 능청스럽게 도망가버렸다. 당연히 가족이니까 같이 계산했다는 앤드류의 말에 마음 한 구석이 찡했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감사 인사를 했다. 그래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학업에 치여 바쁘게 살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3월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고급 크루즈보다는, 가족이 다 함께 즐기는 비교적 저가형 크루즈였지만 내겐 신기한 것들이 차고 넘쳤다. 입국 과정이 복잡할까 걱정했지만 여권을 한 번 더 확인하고 크루즈에 탑승한 후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끝없는 들판에 둘러싸인 캔자스에 살다가 바다를 마주하니 퍽 반가웠다. 


배 위에서는 24시간 먹을 것이 있고 즐길 것이 있었다. 피자나 샌드위치도, 격식 차린 코스 요리도 있었다. 매일 아침, 나갔다 방으로 돌아오면 동물 모양으로 접은 수건이 침대에 놓여 있었다. 다 함께 춤추는 댄스파티를 열고, 섬에 멈추는 날에는 관광하러 내려서 태닝을 했다. 옥색 파도와 야자수, 흰 조개껍데기가 널린 해변은 말로만 들어 봤지 실제로 보니 감흥이 새로웠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것들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피부가 따가워지는 햇살이었다. 


크루즈가 지나간 물 위로는 흰 거품이 만든 길이 펼쳐졌다. 도로가 없는 바다지만, 배는 아무렇게나 항해하지 않고 어떤 경로를 분명히 따르고 있었다. 물에도 길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바다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참 신기했다. 지나갈 곳은 길이 보이지 않는데, 지나온 곳은 뚜렷하게 보였다. 꼭 우리의 삶처럼. 이런 배도 결국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구나. 확실하지 않다고, 두렵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이 배는 항구에만 묶여 평생을 보내겠구나. 

내가 이해받을 수 없다던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던가 하는 이유로 이방인이 되길 두려워해서는 항구에 묶인 멋진 크루즈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킬 수 없는 다짐이 아니길 바라며,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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