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아메리칸 '드림'
'앞으로는 나 자신이 더 많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를 크지 못하게 막고 있는 오래된 허물을 두려움 때문에, 익숙함 속에 있고 싶은 마음에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허물을 찢어버릴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여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나에게 맞는 세계가 어디인지 찾아야 했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며 썼던 글의 일부다. 내가 막상 미국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찾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게 없는 것을 밖에서 찾아봤자 내가 아닌 무언가일 뿐이다. 실제로 내가 한 일은 발견하는 것이었다. 땅에 묻힌 귀중한 보물을 발굴하듯이 깊숙이 숨어 들어간, 내 안의 것들을 꺼내주었다.
어미 닭들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 껍질을 스스로 깨어야 앞으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안전망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전망은 내가 다치지 않도록 지켜 주었지만 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나를 정체시킨 편안함이었다. 스스로 한국, 부모님, 친구들의 익숙함 밖으로 나갔다. 주변의 모든 것에서 새로움이 보였으면 했다. 아파야만 클 수 있다면 성장통은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내 선택에 따라오는 책임을 모두 견디는 건, 어른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세상 어느 말보다 서늘한 한기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말, 두렵다. 그리고 외롭다. 홀로서기의 과정은, 그 활자들을 땔감 삼아 따뜻함을 피워내는 것과 비슷했다. 그 말의 무게가 무거운 짐덩이가 되기보다는, 내 가치의 저울에 더해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
알을 깨고 나갔다고 생각한 미국이란 세상 속에서, 난 새로운 알 껍질 속에 있을 뿐이었다. 이 세계를 깨고 나가면 또 다른 알이 있겠지. 그 껍데기를 두드리고, 부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능력을 발견하고, 한계를 발견하고, 그 한계를 언제든지 깨버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발견했다. 그건 누구도 내게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조차도. 결국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야 했다.
그때부터 내 '드림'이 뭔지 활발하게 탐색했다. 모든 도전에서 얻을 것이 있었다. 처음으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프랑스어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경제 시험에서 유일한 만점을 받아봤다. 독창 대회에 나갔고, 상을 타지 못했다.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사람을 배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나의 일부를 발견했다.
이제 깨달은 한 가지,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디가 되어도, 언제가 되어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
꿈을 향해 달리는 길에서 환경적 조건 때문에 멈추어 있다고 한다면 핑계다. 내 아메리칸 드림이 의미를 가진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꿈은 어느 특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수많은 선택지를 쳐내고 두 가지 학교 중 선택해야 했다. 호스트를 찾기 쉽다는 말에 다른 학교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학교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학교를 바꾸었다. 의식하진 못해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시골, 캔자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내가 드디어, 내 꿈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를 얻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거울에 김이 서린다고 그 너머의 형체가 바뀌지는 않듯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항상 내 안에 있었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많겠지. 그것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계속 손을 뻗어 그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려고 하느냐, 외면하려고 하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