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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n 13. 2024

다시, 캔자스

새로 만난 가족

기내식에 감탄한 적은 처음이었다. 비즈니스 석은 비행 전에 카카오톡으로 미리 메뉴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고등어조림을 시켰을 뿐인데, 샐러드부터 시작해 코스 요리가 나왔다. 그것은 기내식의 맛이 아니었다. 한정식 식당의 맛이었다.


비즈니스석의 힘으로 14시간에 걸친 비행 이후에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달라스 공항에 내리자 잊고 있던 미국의 공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상하게 미국에서만 느껴지는 냄새가 있다. 심리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 옅은 디퓨저와 패스트푸드점의 향기가 느껴진다. 역시나 외국인의 신분으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영어가 귀를 때렸다. 그새 조금 낯설어진 소리였다.


작년처럼 순조롭게 수속을 통과하려는데 아주머니가 내 여권과 서류를 몇 번 훑더니 창구를 닫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미국 공항에서 대답 잘못하면 비밀의 방으로 끌려가서 취조당한다더라, 짐을 다 열어 본다더라 하는 소문들이 마구 떠오르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주머니는 아주 두꺼워 보이는 문을 열고 날 밀어 넣으셨다. 결국 유학 메이트까지 끌려왔으나, 싱겁게도 학교에 대한 질문 몇 번을 할 뿐, 금방 풀려났다. 비즈니스석 덕에 가방도 빠르게 찾았다. 다음 항공편에 늦을까 봐 대기가 6시간 정도 있는 비행을 선택했는데, 약 한 시간 만에 게이트에 도착하고 말았다.


사실 빨리 도착하고 싶진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몇 주 전에나 겨우 찾은 호스트 가족 때문이었다.

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하자면 이랬다. 호스트 엄마인 제나, 호스트 아빠인 데릭, 이십 대 아들 셋. 엄마는 백인, 아빠는 흑인인 커플이라서 나까지 셋이 다니면 인종 대통합의 장면이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합창단 연습에 데려다주실 수 있냐는 질문에 제나는 아들들이 아무도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며 신이 났다. 남자밖에 없는 집에 살다 보니 딸을 많이 원하셨나 보다 싶었다.

작년에 첫 호스트 가족을 만날 때는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려니, 그 어색한 공기를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탓에 조금 숨이 막혔다. 공항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는 마음이 충돌하며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탑승 게이트가 열렸다. 캔자스로 향하는 노란 벽돌 길이 다시 펼쳐진다.


호스트 가족과의 만남은 별다를 게 없었다. 호스트 엄마와 아빠가 마중을 나왔고, 작년에 만난 호스트 가족보다 좀 차분하고 조용하다는 것 이외엔 비슷했다. 조금 더 부자 동네, 조금 더 깔끔하고 하얀 집, 조금 더 작은 방 등등 조금씩 다른 점은 많았지만, 엉뚱한 곳에 끼워 넣은 퍼즐조각이 된 것 같이 애매한 공기는 여전히 답답했다. 그래도 두 번째 호스트 가족을 만나며 느낀 게 있다면, 골디락스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딱 맞는 가족을 찾는 것, 그건 불가능하다. 나와 딱 맞는 사람이란 없으니까. 나도 누구에게든 딱 맞는 사람이 되어줄 수 없다. 우리 앞에는 아주 긴 길이 놓여 있었다. 갈등과 소통, 결국엔 이해에 다다르는 길.


그래도 이번엔 작년보다 한 걸음 더 가까워졌기를 바라며 삐걱거리는 새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오리엔테이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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