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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n 18. 2024

이상한 오즈의 선생님

새로운 시작

11학년의 첫날, 내 일과는 올해 만날 새로운 선생님 일곱 분께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Good morning and nice to meet you! 저는 올해 선생님 수업을 들을 이지우라고 합니다."

이번 시간표는 순서대로 문학과 작문, 정부와 정치, 미적분 1, 물리, 프랑스어 2, 합창단, 그리고 미국 역사였다. 그 순으로 인사를 돌리고 얼굴 도장을 찍었다. 

 3교시 미적분 방으로 향하는데 작년에 영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윌이 인사를 건넸다. 

"Hey! 한국은 어땠어?"

"좋았지! 잠깐만, 지금은 미적분 쌤 뵈러 가는 길이라서."

"오우, 내가 소문을 좀 들었는데... 행운을 빌어!" 

"... okay?"

갑자기 들어가기 무서워진 바람에 아주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스타워즈 피규어 컬렉션과 책상마다 놓인 피젯토이, 수학 아재 개그 포스터로 가득 찬 벽이 선생님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붉은 테 안경에 요란한 패턴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선생님이 조금 기계적인 톤으로 말했다. 

"Can I help you?"

안경알 너머로 비친 홍채는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이 맑은 회색이었다. 

"선생님 뵈러 왔어요! 저는 올해 선생님 수업을 듣는 이지우라고 합니다."

"아 그래.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이만."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문을 나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정들지 않는 미적분을 가르치신다니, 아무래도 가까워지긴 힘들겠단 예감이 들었다. 미국이 그런 건지, 우리 학교의 특징인지, 괴짜와 개성이 넘치는 것의 경계선을 자주 넘나 드는 선생님이 많았다. 내가 우리 학교에 대해 사랑하는 점 중 하나지만, 가끔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엔 길을 헤멜 일이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익숙한 복도와 익숙한 교실들을 지표 삼아 새 교실을 찾을 수 있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도 선생님도 많이 늘었다. 작년에 만들어둔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새로 만들어가야 할 관계가 산더미였는데, 그중 최악은 AP Government & Politics 수업이었다.

정부와 정치는 우리 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수업이다. 보통 12학년이 듣는 수업이어서, 나는 우리 반에서 유일한 11학년이 되었다. 친한 사람 하나 없고 선생님도 처음 뵙는 분이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같은 모둠에는 찰랑이는 금발의 남자 선배, 뚱한 일본계 미국인 선배, 그리고 굉장히 진지한 표정의 백인 선배가 앉았다. 교탁 대용의 테이블에는 거의 학생처럼 보일 법한 남자 선생님이 기분이 나쁜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숨 막히는 어색함 속에서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아침에 내 방에 들어오면 내가 오늘 커피를 몇 잔 마셨는지부터 물어라. 대답이 두 잔 이하면 당장 도망쳐."

장난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에 반절은 조심스레 "하하하..." 하고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기에 대해서 여기 있는 아무도 모르는 걸 하나씩 말해봐. 너부터."

젠장.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식은땀이 흘렀다. 사실 난 이름만 말해도 아무도 모를 법했지만, 저 선생님을 상대로 장난치기 무서웠다. 

"음... 저는 피자를 싫어합니다."

순간 대여섯 명이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선 피자를 싫어한다는 말이 신성모독이라도 되는지... 

수업을 끝내기 전, 선생님이 물었다.

"너희 가장 좋아하는 쿠키가 뭐냐?"

"왜요, 쌤?"

"내 취미가 베이킹이거든. 쿠키를 먹는 동안 불행한 사람은 없지."

생각보다 괜찮은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쌤은 마지막 수업시간까지 한 번도 쿠키를 구워주시지 않았다.


  AP course는 쉬운 대학 수준의 수업을 고등학교에서 듣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올해 스케줄엔 총 일곱 개 수업 중 AP 개나 되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11학년을 Junior라고 부른다. 주니어 해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힘들고 정신없는 때로 유명하다. 학교 공부가 가장 어려워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대학 지원서에서 가장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레 겁먹지 않기로 했지만, 불안이 마음을 어지르는 어쩔 없었다. 그때까지 난 11학년이 얼마나 놀라운 해가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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