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그리고 엄마가 되기까지
「들어가는 글」
내 눈앞에 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아기의 심장이라고 했다.
분당 133회로 뛰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낯선 기쁨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맨 처음 아기의 존재를 확인 했을 때, 그는 이제 겨우 ‘집’을 지어 놓았을 뿐이었다.
동그란 아기집과 난황이 초음파 화면에 비쳤다.
내 몸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태어난 지 33년 만에 처음 써보는 내 몸의 기능이었다.
기쁨과 설렘,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임신 기간 내내 함께했다.
초음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작은 생명을 보며, 이 행운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기를 품었던 32주 6일, 그 짧은 시간을 되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신체의 변화, 감정의 파도 속에서 임신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기와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다.
내 몸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느끼며, 그의 존재에 점점 익숙해졌다.
그 일은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충만한 기쁨을 주었다.
양수가 터졌던 그날 밤,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이라도 가만히 있을 테니
아기가 조금만 더 내 뱃속에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아기가 안락한 뱃속에서 더 놀다 나와 주기를 바랐지만, 그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응급제왕절개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자, 뱃속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가끔 아기가 아직 뱃속에 있는 것처럼 배 속이 꿈틀거릴 때면, 참을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내가 정말 아기를 낳은 게 맞을까?’
‘왜 나는 아기를 더 오래 품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품고 싶었는데...’
아기를 낳은 현실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바보같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동안,
아기는 부지런히 먹고 자고 놀며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마주한 작디작은 아기는,
걱정과 후회로 가득한 엄마와는 달리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보다 백배, 천배 더 의젓한 아기였다.
한 생명체가 ‘내 아이’가 되는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질 때부터일까.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히 나타난 순간부터일까.
초음파 화면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심장을 본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태어난 아기를 처음으로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일까.
이 질문의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수정되는 순간부터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임신 24주 전의 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아이와 나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다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축복이라고, 또 누군가는 족쇄라고 부른다.
이제, 그 질긴 인연의 끈을 함께 잡고,
우리의 이야기를 한 장씩 써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