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제왕절개, 그리고 NICU에서의 시작
이사한 지 겨우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아파트 공동 현관 앞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당장 입을 옷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 아무거나 꺼내 입었다. 원피스와 셔츠가 어울리는지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몸 밖으로 흘러내리는 물에 흠뻑 젖은 잠옷은 벗어 바닥에 던졌다.
옷방을 나오던 순간, 양수로 추정되는 액체가 다시 주르르 흘러내려 밟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남편은 허둥대며 지갑과 가방을 챙기면서도 강아지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잊지 않고 가득 채워두었다.
우리는 구급대원의 안내를 받아 서둘러 차에 올랐다.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던 강아지의 불안한 눈빛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구급차에 올랐다. 아래에서 물이 계속 새고 있었지만, 다른 증상은 없었다.
만약 아기가 37주가 넘었다면 굳이 구급차를 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기가 아직 35주도 되지 않은 미숙아라는 점이었다.
구급대원은 평소 다니던 병원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전화를 건 그는 살짝 신경질을 냈다.
간호사가 32주 아기는 받을 수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대답을 좀 전에 내게 했던 것처럼
반복했던 모양이었다.
“기존에 팔로우업도 안 된 환자를 어떻게 대학병원에 바로 이송합니까.”
구급대원이 상황을 이끌어준 덕분에 우리는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구급차 안 간이침대에 누워 배 위에 두 손을 올렸다. 막 임신 후기에 접어들어 볼록한 배가 만져졌다.
물이 죽죽 흘러내릴 때마다 아기가 있을 공간이 줄어들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동하는 내내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기만 무사하게 해주세요. 아기만 지킬 수 있다면 몇 달이고 침대에 누워만 있으라 해도 할게요. 제발, 제발….’
11시쯤 도착한 병원에는 주치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대에 오르는 순간에도 액체는 줄줄 흘러내렸다.
멈출 기미가 없었다. 검사 결과,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액체는 모두 양수였다.
“양수가 나오고 있으니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우선 아기가 주수 평균보다 크고, 태아폐성숙 주사를 맞아놓은 걸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가 있겠고요.”
의사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대학병원에 연락을 돌리고 있다며, 전공의 파업 탓에 연결이 바로 될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오전까지는 연계가 가능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수는 계속 쏟아졌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한 시간이 지나서 대학병원으로 이송이 결정됐다.
밤 열두 시가 넘어 텅 빈 거리에 우리가 부른 택시가 서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아기가 내려오려는 것인지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빨리 걷기가 힘들었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세상일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구나.”
“그러게. 정말, 뜻대로 되질 않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운명이 우리 아기를 지켜주기를 바라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집에 갈게요. 집에 가서 약 넣고 누워 있을게요.”
며칠 더 입원해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사의 권유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혈과 짧은 자궁경부 길이로 인해 2박 3일간 입원한 뒤, 퇴원을 앞둔 진료 자리에서였다.
입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간 입원 생활은 모든 게 불편했다. 라보파(자궁수축억제제) 부작용, 간호사 실수로 몇 번이고 다시 주삿바늘을 밀어 넣은 바람에 생긴 손목의 욱신거리는 통증, 석기시대 원시인조차 거부할 법한 딱딱한 침대…. 병실 안에는 먼지가 둥둥 떠다녀 잠은커녕 목이 가래로 막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현생에 두고 온 일들이 마음에 걸렸다.
갑작스레 친구 집에 맡긴 강아지, 내가 입원해 버린 날 치러진 이사, 전화로만 지시하고 보지 못한 현장….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
나는 확신했다. 수축도 잡혔고, 하혈도 멎었으니, 집에서 맘 편히 푹 쉬는 게 아기에게도 더 좋을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조금만 더 참고 입원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두가 자는 새벽, 병원 침대에 누워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 눈물 덩어리가 가슴안에 꽉 차서 맺힌 듯 명치가 아렸다.
‘그랬다면 지금도 아기가 내 뱃속에서 마음껏 먹고 놀며 자라고 있었을까.
작은 몸에 링거와 콧줄을 달고 엄마아빠와 떨어져 NICU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배를 쓸어내렸다. 텅 비어버린 뱃속은 낯설고 고요했다.
구렁이처럼 뱃속을 휩쓸고 다니던 생명은 더 이상 내 안에 없었다.
원한다고 해서 바로 볼 수도 없었다. 면회는 일주일에 단 두 번. 내일이 첫날이었다.
“꼭 보러 가야지.”
아기를 직접 봐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NICU로 보내졌기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아기를 낳았다는 실감이 없었다. 남편이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을 봐도 그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왜일까. 내 아기의 모습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고 기쁘지도 않았다.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봐야만 비로소 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