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의 갑작스러운 만남, 그리고 기다림 (2)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 럭키보이의 탄생

by 푸르른도로시


1.


수술실에 가기 전, 나는 작고 어두운 방에서 양수와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 있었다.

몸에서 한기가 돌아 뼛속까지 떨렸다. 동사(冬死)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진통이 오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몸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묵직한 파도 같았다. 통증이 밀려 오면 숨을 들이마시며 골반을 살짝 들었다가 밀려가면 숨을 깊게 내쉬며 골반을 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함이었는데, 효과가 있었다. 진통 주기가 점점 짧아질 때 즈음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들어와 내진을 했다. 3센티가 열렸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수술실로 이동하기 위해 바퀴달린 베드로 옮겨졌다. 수술 전 금식 때문에 5시간 동안 진통하며 기다린 후였다.



척추 마취 주사를 맞자마자 질에서 커다랗고 따뜻한 무언가가 매끄럽게 훅 빠져나갔다. 옆에 있던 마취과 선생님께 여쭤보자 “핏덩어리예요.”라는 대답이 들렸다.

왜 이렇게 큰 핏덩이가 나오는 걸까? 원래 그런 걸까. 뭔가 잘 못된 것은 아닐까. 아기는 괜찮을까.


마취가 잘 이뤄졌는지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아프지는 않지만 피부가 많이 당기는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수술 장면을 볼 수 없도록 아래는 천으로 가려졌다.

칼로 북북 살을 베어내는 느낌이 나고,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곧 아기가 나왔다.

꽁꽁 언 땅에서 팔뚝만한 무를 뽑아내는 과정 같았다.


“응아 응아 응아”

아기의 첫 목소리는 아기고양이의 울음처럼 가냘프고 달콤했다.

오늘 얼굴도 처음 본 교수님이 아기의 출생 시간, 성별, 몸무게를 말했다.

아기가 공식적으로 인간 세상의 구성원이 된 첫 순간이었다.


수술실 스테프(이 분의 직함을 모르기에 ‘스테프’라고 하겠다)이 아기를 안고 나의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무언가 처치를 하는 듯 하였다. 그녀의 등 뒤로 바둥대는 아기의 손과 발이 보였다.

2.3kg밖에 안 되는 작은 아기의 손, 발이 왜인지 크게 느껴졌다.


엄마에게 아기를 보여주라는 교수의 지시에 따라 아기가 잠깐 내 곁에 왔다.

퉁퉁 불어 빨갛고 시퍼런 얼굴의 작은 아기가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참 못생겼네.’ 장장 8개월을 뱃속에 품었던 아기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아기는 이동식 인큐베이터에 실려 곧장 NICU로 향했다.


“재워 드릴까요?” 마취과 의사가 물었다.

“네.”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힘이 없었다. 왠지 모를 패배감이 투명한 갑옷처럼 온 몸을 감쌌다.

참을 수 없이 눈꺼풀이 감겼다.










2.


“잠깐 눈을 마주쳤는데 아기 눈에 우주가 있더라. 보고 나서 바로 사랑에 빠졌어.”

인큐베이터에 아기가 실려 가는 내내 남편은 영상과 사진을 찍은 모양이었다.

당장 아기를 보지 못하는 산모님을 위해 남편분이 영상, 사진 많이 찍어두시라고 NICU간호사가 시켰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그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영상 속 아기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태어난 데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낯선 곳으로 이동해야 했던 아기가 너무 가엾었고,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 덕분에 아기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설명하는 남편의 말에도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았다. 이런 얘기를 꺼내자 남편이 말했다.


“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던데. 찾아보니 여기 NICU가 전국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이더라. 수술 잘 받았고, 전문가들이 아기 케어해 줄 테니 다 잘 될 거야. 우리 아기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야. 럭키보이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편의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우리 아기는 정말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

양수가 터진 걸 바로 알았던 것,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을 때 마침 주치의가 당직이었던 것, 한 시간 안에 근처 대학병원으로 연계된 것, 마침 수술을 해주실 교수님이 계셨던 것, NICU에 자리가 있었던 것........ 마치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룻밤 새에 휘몰아치듯 벌어진 일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란 없다는 것, 만약 어떤 일이 내 마음대로 되고 있다면 그건 나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는 것.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는 것, 외출 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는 것.......



이 모든 일은 내가 노력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임신을 안 순간부터, 나는 줄곧 아기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싶은지 생각했었다.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었다. 탯줄은 남편이 자르게 하고 싶었고, 태어나자마자 품에 안고 싶었고...... 이미 몸에 흉터가 많으니 되도록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의 노력은 있었다.

침착하게 병원에 전화했고, 아기를 못 받아 준다는 대답을 듣자 119에 전화를 했다.

빠른 시간 안에 병원 갈 채비를 마치고 구급차 안에서 기도도 했다. 진통도 견뎠고,

의료진의 지시를 잘 따랐다. 차분하게 수술도 잘 받았다. 이 모두를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노력만으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두는 운이었고, 우연이었다.

정말로 남편의 말대로 ‘럭키’했던 거였다.



001.jpg 여름 아기가 될 줄 알았던, 그러나 봄에 태어난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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