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모유가 나올 거예요

- 이른둥이의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by 푸르른도로시





여느 때처럼 간호사가 들어오겠다는 신호를 주더니 커튼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혈압을 재겠다거나 링거를 교체하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곧 모유가 나올 거예요. 가슴 마사지 교육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보시고 미리 해주세요.

그래야 젖몸살을 예방할 수 있어요.”


내 머리 위로 물음표가 둥둥 떠올랐다.

모유가 나온다고? 내 가슴에서? 아기를 낳은 건 맞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게다가 수술로 아기를 꺼냈는데, 몸이 어떻게 아기가 나왔음을 인식하고 모유를 만들어내는 걸까? 신기했다.


지금 돌아보면 아기가 태어났으니 모유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출산과 입원 생활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때는 ‘모유가 나온다’는 말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간호사는 젖몸살 예방을 위해 젖을 빼내야 한다며 유축기를 준비하라고 설명한 뒤 커튼을 닫았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


“헉, 나온다.”


혹시나 싶어 가슴을 살짝 눌러 봤더니 세상에, 노란 액체 한 방울이 맺혔다. 내 몸에서 나온 첫 모유를 남편과 둘이서 함께 목격한 순간이었다. 아직 유축기도, 모유저장팩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아깝지만 그냥 짜서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초유가 아기 면역력에 좋다는 글을 봤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당장 유축기를 구해오겠다고 했다.



다행히 입원 후 급하게 예약한 병원 근처 조리원에서 유축기를 대여해주겠다고 했다. 남편이 조리원으로 간 동안, 나는 임신 중 즐겨 보던 유튜브 ‘맘똑티비’에서 유축기 사용법과 유방 마사지법을 찾아 그에게 공유했다.


조리원에서 가져온 유축기는 ‘스펙트라’ 제품이었다. 꽤 사용감이 있었고, 둥근 본체 위에 유두처럼 튀어나온 압력 조절기가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우리는 모유 저장팩도 부랴부랴 주문했다. 그날 저녁에는 남편이 내 가슴 마사지를 해주었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진지한 시간이었다.









[신생아 정보 알림]
이름 : 도로시아기
날짜 : 2025년 4월 18일
체중 : 2150g
수유량 : 40cc(1회당)

모유, 다음 방문 시 가져다주세요^^





매일 오전 11시에 도착하던 NICU 알림 톡이, 그날은 오후에도 왔다. 모유를 가져다 달라니. 하지만 첫날 손으로 짜본 양은 한 모금도 되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초유는 원래 적게 나오고, 신생아 위도 작아 조금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게다가 초유에는 면역 성분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되어 이른둥이에게 특히 좋다고 했다. 미숙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괴사성 장염 같은 질환도 예방해 준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라면 아직 뱃속에서 편히 자라고 있을 아기였다. 품어주지 못해 허전하고 미안했는데, 드디어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겨 기뻤다.



문제는 소독이었다. 병원에서는 열탕 소독이 불가능했다. 데스크에 물어보니 분만 병동 자외선 소독기를 사용하라고 했다. 입원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제왕절개 수술을 한지 며칠 안 된 몸으로는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한 손에는 뜨거운 정수기 물에 담가 한 번 세척한 깔때기와 젖병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링거 거치대에 몸을 의지하듯 꽉 잡았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배가 걷어차이는 듯 아팠고, 아래는 대못으로 찌르는 듯했다.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소독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과 함께 유축기를 작동시켰다. 구식이라 그런지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기분 나쁘게 울렸다. 병실에는 우리 외에 두 팀이 더 있어 괜히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마음속으로 계속 죄송합니다를 외쳤다.






20분이 좀 넘었을까. 젖병에 모유가 모였다. 겨우 10ml 남짓. 남편은 손을 소독한 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 저장팩에 옮겨 담았다.


간호사 데스크에 네임펜을 요청하니, 직급이 높아 보이는 선생님이 금세 눈치채셨다.


“NICU에 모유 갖다주려고요?”
“네. 그런데 얼려서 가져가라고 하시던데요.”
“바로 근처인데 뭘. 얼리는 것보다 바로 갖다주는 게 좋아요.”


아주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그분이 경쾌하게 말했다.

마침 그날은 NICU 면회 날이었다. 모유를 전달하고 아기를 보고 돌아오니, 아까 그 선생님이 모유 잘 갖다줬냐고 물어보셨다. 복도에 있던 다른 분들도 ‘303호 환자가 모유를 가져다줬대’라며 이야기하는 듯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사이였던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묘하게, 또 기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아기에게 오직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남편과 나,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해낸 일이기에 더욱 벅찼다.



아이가 우리가 보낸 초유를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었다.





이전 05화NICU 첫 면회, 그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