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 없이 시작된 눈물의 조리원 생활
“언제 퇴원할지는 확실히 말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략 한 달 정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우리 아기 담당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퇴원을 언제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거니와, 괜히 날짜를 정해놨다가 더 늦어지면 곤란해져서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고도 하셨다. 결국, 나는 아기보다 먼저 퇴원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이라고 짧게 의역되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있다. 그렇다. 나에게도 다 계획이 있었다. 운명에게 뒤통수를 맞기 전까지는.
내 바람대로라면, 나는 우리 엄마처럼 막달에 순산을 했어야 했다. 불꽃 서칭으로 신중하게 고른 병원에서 아기를 무사히 낳고, 출산 동영상도 찍고, 남편에게 탯줄도 자르게 하고, 태어나자마자 젖도 물려봐야 했다.
실제 내가 겪어야 했던 출산은 정반대였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갑작스레 수술을 하게 되었고, 탯줄은커녕 남편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영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발 도장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실려 갔다. 정말이지 내 계획과 소망은 철저히 배반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아기는 “이 정도면 상태가 양호한(의사 왈)”편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해야 했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법이다.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 갈 때쯤에는 다들 아기 막달에 잘만 낳던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하는 원망이 올라왔다. 예정했던 조리원에 가지도 못하게 되어 우울함은 더 깊어졌다. 온갖 풀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계절, 4월.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급하게 구한 다른 조리원에 홀로 입소했다.
조리원에 들어가기까지 망설임이 있었다. 아기도 없이 혼자 들어가서 뭐 하나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속상할 것 같아 차라리 집에 있을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한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울적할 것 같았다. 돈을 좀 쓰더라도 조리원에 가서 푹 쉬는 게 마음 건강에 좋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권유가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와 멀어지는 것이 싫었다. 집으로 가면 병원까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면회는 일주일에 두 번이라 큰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아이와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가뜩이나 출산 후 호르몬 변화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아기와 떨어져 집에 있으면 울기밖에 더 하겠나 싶어,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조리원 입소를 결정했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유축기와 정수기까지 비치되어 넓고 쾌적했다.
맨 끝 방이라 창밖 풍경도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모션 베드에 커다란 티비까지.
아기와 함께였다면 꽤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조산에 대한 한 유튜브 영상에서,
"아기가 퇴원하기 전까지 체력을 잘 비축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마음껏 놀아두세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장은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아기 퇴원 후엔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니 그 전에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조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아기를 집에 데려온 뒤에는 자유롭게 마음껏 노는 일이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간식을 먹으면서도, 바깥에 핀 꽃을 보면서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출산 후 예민해지는 건 흔한 일이라지만, 밤새 울다가 잠도 못 자는 건 분명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조리원에서 실시한 산후우울증 검사에서도 ‘위험 수준’ 결과가 나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방문을 권유받기까지 했다.
‘전세 문제로 그렇게 속 끓이지 말걸’,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걸, 그냥 무시할걸’,
‘무리해서 집 보러 다니느라 조산한 걸까…….’
머릿속은 온통 후회로 가득했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전세금 반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도,
새집을 구하느라 열심히 발품을 팔았던 것도, 모두 아기를 위한 일이었는데,
그 일들 때문에 조산이 된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기 낳고 나면 한동안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아 30주에 갔던 여행도 후회가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혼자 병원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하루 종일 흐르는 눈물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출산 후 퉁퉁 부은 몸에, 눈물로 더 퉁퉁 부은 얼굴로, 먹고 유축하고 또다시 먹고 유축하는 조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