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울지 않았다

-산후 우울, 죄책감, 그리고 눈물이 멎은 순간

by 푸르른도로시



“조리원은 당연히 가야지. 네가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아기란 존재는 앞으로 네 삶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거야. 조리원에서 마지막 자유를 누려야지.”

조리원에 갈지 말지 고민하던 내게, 아이 둘을 둔 친구가 해준 조언이었다.


나는 임신 기간 중 조리원을 갈까 말까 망설였다. 세상에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이 나보다 신생아를 잘 돌보는 베테랑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기와 떨어져 있으면 우울할 것 같기도 했다.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성격이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신생아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아기는 내 바람과 달리 빨리 세상에 나왔다. 여름에 만날 줄 알았던 아기를 봄에 맞이하면서, 나는 결국 그토록 망설이던 조리원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출산 후 며칠간은 누구나 우울해진다고 한다. 임신 중 높았던 호르몬 수치가 출산 뒤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어도 눈물이 날 시기에, 곁에 아기가 없어 가슴이 텅 빈 듯 허전했다. 다른 엄마들이 수유하는 시간에 홀로 방에서 유축을 하며 눈물을 훔치는 나날이었다.








조리원은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문제는 밥만 퍼서 앉으면 눈물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음식이 맛있을수록 눈물도 더 쏟아졌다. 내가 먹은 영양분을 원래라면 뱃속에서 편히 받아야 할 아기가, 병실에서 콧줄로 힘겹게 먹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밥숟가락이 눈물로 젖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울고, 또 울었다.


수술 경과를 확인하러 대학병원에 간 날에도 로비에 들어서기 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어린애처럼 질질 짜며 진료를 보고 싶지 않아 애써 눈물을 눌렀지만, 퉁퉁 부은 눈은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내 수술을 집도했던 교수님은 마른 체구에 무뚝뚝한 인상의 노교수였다. 곧은 눈빛과 꼿꼿한 허리가 인상적이었고, 검색해보니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분이라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교수님은 내 얼굴을 보고 말씀하셨다.


“눈이 퉁퉁 부었네. 엄마가 아기 걱정에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담백한 어투로 건넨 한마디가 잔뜩 위축돼 있던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아기는 소아과에 믿고 맡겨. 거기서 다 잘해줄 거야.”

그동안 교수님과 마주할 기회는 수술 직전과 직후 잠깐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이 분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샘솟았다.


교수님은 이어 내 출산이 꽤 위험했다고 설명했다. 양수가 터지는 과정에서 태반조기박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태반은 아기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는 통로인데, 원래라면 아기 출산 후에야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나는 물었다. 조기양막파수, 거기에 태반조기박리까지.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원인불명.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운이 없었던 거지.”

역시 담백한 한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는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내 잘못이 아니구나.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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