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부모는 함께 성장한다
“얘는 지금 지나치게 살이 쪘어요. 초고도 비만이에요. 원래 미숙아들이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천 명 중 99.8퍼센트입니다. 백 명 중 1등, 천 명 중 2등이에요. 엄마들이 자꾸 쓸데없는 분유를 주거든요.”
의사의 거침없는 대답이 그대로 쏟아졌다. 워낙 직설적인 분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지만,
“우리 애가 돼지라니!”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기 얘기라는 걸 알기라도 한 듯, 토실토실 귀여운 우리 아기 돼지가 버둥대며 울었다.
의사가 책을 펼쳐 한 구절을 가리켰다.
“‘모든 아기는 운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운다. 이것은 자궁에서 나와 바깥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엄마가 아무리 잘해도 애들은 울어요.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힘들어서 운다고요. 젖양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남편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곧 울음을 그쳤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봐요, 울다가 그쳤죠? 안고 있던 자세가 불편했거나 뭔가가 불편해서 운 거예요. 아기는 심심해도, 짜증 나도, 괴로워도, 흥분해도 울어요.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게 뒤지게 힘들어서 제일 많이 웁니다. 배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안아달라는지 다 해봤다? 그래도 운다? 그럼 세상이 힘들어서 우는 거예요. 그럴 땐 달랜다고 달래지는 게 아니에요. 체크리스트 다 해봤으면, 눕혀놓고 커피 마시면 됩니다.”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지금까지 말한 건 정상적인 만삭아 기준이에요. 그런데 얘는 두 달이나 일찍 태어났어요. 적응이 더디고 예민한데, 엄마는 자꾸 젖양 부족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먹이죠. 그러다 보니 아까 본 것처럼 체중이 99.8퍼센트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아기가 젖병을 물고 발버둥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의사가 물었다.
“엄마, 배가 고프면 다시 먹으려고 할까요, 발버둥을 칠까요? 배고픈 아기는 먹을까요, 딴짓을 할까요?”
“먹겠죠?”
“당연하죠. 먹이려고 하는데 발버둥 친다면, 그건 먹기 싫은 거예요. 먹기 싫다는 건 이미 배가 찼다는 뜻이고요.”
바로 그거였다.
먹기 싫다는 신호였다.
젖을 물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우는 아기를 보며 ‘배가 고픈가 보다’, ‘빠는 힘이 약해서 많이 못 먹었나 보다’ 하고 분유를 보충해 주곤 했는데, 알고 보니 아기는 전혀 배고프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불편하거나, 혹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 ‘뒤지게’ 힘들어서 울었던 거다. 아기의 처지에서 생각하니 단번에 이해됐다.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면 ‘보충해야겠다’며 주던 분유를 끊었다. 젖만 물리며 아기의 신호를 유심히 살피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먹고 싶은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밥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불편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아기의 신호를 정확히 해석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밤낮없이, 4kg도 안 되는 작은 몸이 터질 듯 울어대니 신경이 곤두서서 차분히 신호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불편을 해결해 줘야 하는데 이유를 모르니 아기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멘붕에 빠지곤 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어둠 속에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길을 찾는 기분이었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무렵이 되면 아기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어 육아가 수월해진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 기적이 찾아왔다.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의사 표현 능력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우리 역시 아이의 신호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면서 육아는 한층 쉬워졌다.
원더윅스니, 공포의 18개월이니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이 쉽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쉽다는 보장은 없다.
아기들은 고속으로 성장 중이고, 성장통은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아기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서로 보내는 신호를 알아가며 맞춰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