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양리 사람들 1

증조할머니와의 동거

by 김상궁

엄마가 쌍둥이 동생을 낳고 산후조리를 해준 후 나는 외할머니를 따라 충남 예산 깊이 들어앉은 간양리로 오게 되었다. 계절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었고 할머니 집 뒷산은 태산처럼 높아 어린 내 눈엔 보기만 해도 무서웠던 산이었다. 나중에 들어 안 얘기지만 간양리는 산속 깊이 자리해 6.25 때도 큰 피해를 안 입었다고 하니 얼마나 그 산이 깊은지를 말해준다.
외가댁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네모진 마당에 펌프질을 할 수 있는 넉넉한 마당이 있었고 기다랗게 뻗은 일자형 한옥이었다. 맨 왼쪽에는 넓은 광과 부엌이 있었는데, 차례대로 안방과 옆방, 건넌방 식으로 붙어있는 형태였다. 부엌은 진흙바닥에 아궁이가 두 개여서 부뚜막에는 큰 무쇠솥이 걸려 있었고 뒤 곁으로 나가는 문과 창이 나있었는데 늘 들어가면 눈이 매울 정도로 매캐한 냄새가 가득한 전형적인 시골 부엌이었다.
부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은 당시 외증조할머니의 방이었는데 그 방이 내가 앞으로 함께 자야 하는 방이었고 나의 동거인인 할머니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난 이제 막 4살이 되는 나이였지만 할머니의 인상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낮은 보료 같은 방석을 깔고 얌전히 앉아있던 할머니는 옥색 뉴똥의 반짝거리는 한복을 입고 계셨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 고려청자 같은 모습이라고 하면 가장 근접한 묘사일까? 그리고 돋보기안경이 얼마나 두꺼웠는지 할머니의 눈동자는 거의 안경에 닿을 정도로 크게 튀어나온 형상이었다. 당연히 나는 할머니가 무서웠고 옆에 가려고도 안 했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 긴 머리를 다 풀어헤치고 참빗으로 빗어 내리던 귀신같은 흉흉한 모습에 난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얼른 그 긴 머리를 비녀로 잡아 올리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증조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고고한 학처럼 목을 빳빳이 세우고 그 권위를 드러내셨는데 이상하게도 나하고만 있으면 장난을 걸어왔다. 툭 치고 모른 척한다거나 ‘얘야~용돈 줄까?’ 하면서 치마를 계속 걷어 올려 속곳 바지 속 작은 주머니를 까뒤집으며 ‘땡전 한 푼 없~~~ 다’ 하는데 마치 ‘영구 없~~~ 다’ 하는 듯 나를 골려댔다. 그리고 할머니 방 벽면에는 작은 다락같은 옷장이 있었는데 가끔 나에게 제사상에 올리던 알록달록 색깔의 아기 손바닥만 한 사탕을 휴지에 싸서 건네주시곤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동거는 적당히 성공적이었으며 어느덧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해 겨울 첫째 삼촌이 장가를 가게 되면서 시골집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는데 일자형 한옥 끄트머리에 하나의 방을 더 만드는 형식이었다. 당시 색동 한복을 입은 새색시 외숙모는 정말 내 눈에 공주처럼 예뻐서 ‘나도 크면 꼭 저런 이쁜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신혼부부의 신혼살림방이 복도 끝에 마련이 되고 나서 할머니의 장난 끼는 더욱 발동했다.
‘얘야~몰래 가서 저 방 좀 보고 와라. 둘이 뭐 하고 있나~~ 어서!’
‘왜 할머니가 안 가고 나보고 가래?’
‘에이~네가 가서 보고 얘기해 주면 더 재밌지? 둘이 껴안고 뭐 하나 보고 와봐 얼른~~’
이처럼 할머니의 장난은 항상 나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아침상 차리는 손주 며느리 앞에선 그렇게 도도하고 차가울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왜 할머니는 그 방이 그토록 궁금했을까? 어릴 적 나의 생각은 거기에만 머물렀었다.
증조할머니에게 우리 엄마는 너무 사랑스러운 첫 손녀였다. 어릴 적 엄마는 시골아이 같지 않게 얼굴도 하얗고 숱 많은 검은 머리에 무척 이뻤다고 한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엄마는 그저 너무 예쁜 손녀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첫 손녀가 학교에 간다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여자는 찬디 앉는 거 아니다~’하며 손수건을 마룻바닥에 깔아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 사랑을 담아 키운 첫 손녀가 낳은 첫 딸내미가.. 할머니 눈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어린 시절 나는 그 사랑을 다 알지 못했다.
이후 학교 갈 나이가 되어 나는 서울로 갔고 그 몇 년이 흐른 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 난 너무 어려서 그게 슬픔인지 뭔지는 몰랐다. 하지만 방학이면 할머니집에 내려가서 방학 내내 지내다 오곤 했는데 할머니가 앉아 계시던 그 자리와 할머니의 농섞인 장난들, 고려청자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던 할머니의 한복치맛자락, 할머니의 은색비녀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지나고 보니 엄마와 떨어져 서러웠을 증손녀에게 증조할머니는 당신이 해 줄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주셨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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