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이야기

두런두런

by 두런두런

사물 하나만 자세히 봐도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다.

의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대부분 교회 예배당 의자는 긴 나무의자이다.

긴 의자가 예배당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한 개의 긴 의자에는 보통 3~4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길이이다.

앉을 때 차례대로 안쪽부터 들어가 앉으면 좋으련만, 종종 가장자리에 딱 움직이지 않을 태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서 무릎을 살짝 한쪽으로 돌려주며 들어가서 앉으라고 무언의 눈짓을 보내기도 한다.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어쩔 텐가.. 나중에 온 사람이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느 날을 뒤쪽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데 불쾌함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시대가 변하고 교회 내 다른 시설은 첨단으로 바뀌었는데도 교회 의자는 불편한 구조의 의자를 계속해서 쓰는 걸까? 의자 입구 쪽이 막혀 있지 않더라도 안쪽까지 들어가서 앉으려면 근엄하신 장로님도, 고상하신 권사님도 옆으로 옆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모습이 어떤 직분자라도 겸손하고 아이처럼 순수한 걸음걸이로 자리에 앉게 만든다.

그리고 이 긴 의자는 요술의자이다. 코로나 기간에는 앞뒤양옆을 띄운다고 띄엄띄엄 바둑알처럼 떨어져 앉아 있었다가도, 방역지침이 해제된 뒤 성탄예배나 송구영신 예배 때는 한 의자에 6~7명도 앉아서 서로의 허벅지 온기를 느끼게도 하였다. 예배당에 놓인 긴 의자의 개수는 변함이 없지만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몇 배나 차이가 생기는 요술의자이다.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밀고 앉고 싶어도 내 자리만 움직일 수도 없다. 안쪽에 앉은 사람이 중간에 나가려면 일제히 일어나거나 무릎을 조신하게 한쪽방향으로 모아주어야 한다. 어쩌다가 다리를 흔드는 사람이라도 같이 앉았다면 산만해서 그날 설교는 못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요상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설교 말씀에 감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의자 모양이 하나 더 있다. 흔들의자이다.

이름 그대로 흔들흔들 스윙을 하면서 기대어 안길 수 있는 의자이다. 보통의 의자는 가능한 바른 자세로 허리를 곧추세워 앉지만 흔들의자는 최대한 릴랙스 한 자세를 취한다. 머리까지 등뒤로 붙여 기댄다면 유연한 J자 모양으로 곡선이 만들어진다. 등받이 부분도 양옆이 안쪽으로 모아주어 포옹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나의 심장박동, 호흡, 바람결에 맞춰 살랑살랑 움직임을 주면 그곳이 앉은 상태로 지상 낙원이다.


살다 보면 가끔 나의 삶의 템포를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때는 흔들의자에 잠시 앉아 세상과 나의 박자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내 심장이 너무 쿵쾅쿵쾅 요동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숨을 헐떡이도록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포근한 무릎담요까지 살포시 덮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어느덧 마법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듯이 상상의 나래가 이것저것 펼쳐진다. 흔들의자가 나에게는 케렌시아(Querncia스페인어) 같은 공간이다.


...


흔들의자에서 살랑살랑 몸과 마음과 영혼이 흔들린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상쾌해졌던 머리가 회복의 반환점을 돌고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다. 벌떡! 일어나서 마저 해야 할 일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뚜벅뚜벅.





*의자 사진-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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