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다 감사!!
나는 금융에 왕초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산증식에는 일자무식에 가깝다.
직장생활을 25년 넘게 하고, 살림을 20년 이상 하고 있으며, 추억의 가계부까지 적던 1인이었지만, 암튼 돈은 '편리한 종이' 정도라는 생각을 종종 할 때도 있을 만큼 돈과 자산증식과 투자와는 늘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한 맺힌 사연도 있으나 그것에 대하여는 각설한다.
사회인의 한 명으로 감사편지 마저 쓰고 싶은 금융인, 어느 은행의 부장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만기가 된 적금, 소위 종잣돈이라고 할 만한 액수의 돈이 생겼다. 당장은 이 '편리한 종이'를 쓸 곳이 없었고 뉴스에서 본 은행 이율은 집 옷장에 두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왔다 갔다 은행 다녀오는 일이 번거로울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업계의 마케팅은 어찌나 집요하고 철두철미한지 만기가 된 적금이 있음을 알고 좋은 투자 상품이 있으니 상담 한 번 받아보라고 상냥한 목소리로 열심히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전화를 몇 번을 받던 중 "그래, 오랜만에 은행 가서 금융 공부나 한 번 하고 와야겠다"라는 마음의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한 금융인이다.
내가 고객 입장이지만, 사실 금융의 기초지식도 없는 나에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되었다. 투자금액이 수십 억대도 아닌 정말 이것을 투자라고 할 수 있나라는 소액을 가지고 있는 고객을 만나는 금융인들의 마음이 사뭇 궁금했다.
한 부장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나의 금융인식 수준을 파악하시고 맞춤 설명에 들어가셨다.
개념을 설명하려면 또 다른 몇 가지 기본 지식을 끌어와야 하고, 그것을 잘 이해시키려면 적절한 예시가 필요하고, 설명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면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늘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명을 하는 태도이다.
'당신은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군요. 한심하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니 내가 하는 말이 완벽하게 맞으니 따르시오'
'이건 고급정보인데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니 어디 가서 말하지 마세요'
'바쁜데 이런 자잘한 금액까지 내가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짜증 나'
'다음 고객이 예약되어 있어 빠르게 결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재촉까지
이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금융상담을 얼마나 많이 당했던가... 내 돈으로 투자하면서 받는 푸대접은 껄끄럽기 그지없다.
나도 솔직히 이런 선입견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내서 왔으니 상담을 잘 받고자 하는 자세를 나부터 보였다. 똑바로 앉아서 말똥말똥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들은 것이다.
" oo고객님, 현시점의 투자에는 이런, 저런 것들이 가능합니다."
"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시라면 당연히 모르실 수 있지요. 제가 천천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 투자 약관의 설명에는 원칙적으로 위험고지를 하고 있지만, 고객님의 투자성향을 고려하면 감당할 수 있는 안전상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제가 설명드린 것이 이해가 되실까요?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이런 대화가 차근차근한 말투로 전혀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으며, 자그마치 2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금융상품 대화의 말미에는 한 부장님의 자녀문제, 이사문제까지 듣게 되었다.
오늘 처음 만난 분에게 그의 최근 고민들까지 듣다니!
나의 금융투자 상담자 중에 기억될 만한 한 분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모름지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와 같이 대화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돈도 남고 사람도 남는다.
p.s. 언어유희 같지만 이 귀한 금융인의 성도 "한"씨였다.
그래서 '한 금융인에게 드리는 감사 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