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겨울, 귀국이라는 이름의 여행
해외살이를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이제는 이곳 인도네시아도 많이 익숙해졌다. 해외에 살다 보니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자각은 더 많이 하고 살지만 요즘에는 어디서나 한국 음식을 접할 수 있고, 넷플릭스를 틀어도 K-드라마가 탑 10위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인마트를 가면 웬만한 제품들을 다 구매할 수 있고, 심지어 자카르타에는 최근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도 생겼다.
그럼에도 어딘가 마음 한편에 그리움이 남아 있다. 가장 큰 그리움은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들과 마음먹으면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겠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시린 겨울, 여름이 가시면서 서늘해지던 날씨, 따뜻한 봄의 나른함, 일찍 찾아오는 겨울밤의 어둠과 조용함. 아무래도 계절감이 없는 열대의 나라에 살다 보니 날씨가 바뀌면서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던 그 감각이 그립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자꾸 찾고 싶어진다. 이방인으로서 놓칠 수 없는 긴장의 끈과 미묘하게 매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보면 한국에서 살 때도 일상의 피로도가 이렇게 컸을지 자꾸 가늠해 보게 된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일상의 피로는 단지 내가 해외에 살아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일상의 삶 때문인데 마치 한국에 살았다면 그 피로도가 없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환상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2025년 겨울, 너울이 한국에 오면 같이 하동으로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그와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부터 하동 여행은 한국을 가면 연례적으로 치러야 할 업무보다 체크리스트 상 우선순위가 되었다 (병원과 치과 순례하기, 은행 가기, 친척과 친지 방문, SNS에서 점찍어 놓았던 다이소 꿀템 사기, 순대국밥, 냉면 먹기 등).
그전에는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다시 한국과 연결되고, 나를 지탱해 주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일에서 위안을 얻었다. 이번에도 비슷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과거의 기억과 추억만을 더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여전히 그곳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가늠하기보다는 그저 그 순간의 한국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애틋한 ‘모국’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아와 누릴 수 있으면서도 어딘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나라이지만 완전히 속해있지도, 완전히 떠나 있지도 않은 상태로, 외국인은 아니지만 배타성을 가진 한국인으로 존재하는 어딘가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을 경험하고 싶었던 마음이 내게 있었다는 것을 한국을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한국 일정에서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 하동 여행은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그 갈증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하동으로 향한 나의 여행은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