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에피소드 티

차와 차 이야기

by 도리

너울과 내가 전날 진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부터 서둘러서 하동으로 간 이유는 오전에 진행되는 다도 체험을 위해서였다. 진주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는 개양, 문산, 완사, 횡천을 지나 하동에 도착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질주했고, 나는 차가 정차할 때마다 행여 지나친 것은 아닌지 서둘러 지도를 확인했다.


하동 읍내에 들어서자 버스는 시내버스처럼 정류장마다 멈췄고, 우리는 어벙하게 버스가 멈췄다 섰다 하는 걸 보고 있다가 렌터카 회사를 지나쳐서야 서둘러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청량해 여행지에 왔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진주도 따뜻했는데 하동의 날씨는 더 포근했고, 진주와 다른 자연과 시골의 내음이 있었다.


렌터카 회사까지 조금 걸었어야 했는데 왼편에 들이 펼쳐진 풍경을 보며 잘 닦여진 산책로를 걸으니 점점 여행 온 사실이 실감이 났다. 게다가 약간 멀미가 나려던 차라 나지막한 건물들과 차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읍내길을 걸으니 괜히 들떠 너울과 나는 조잘거리며 여행자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는 하동에 유일한 렌터카인 하동드림렌터카에서 차를 찾아서,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미리 계획했던 일정을 향해 출발했다.


첫 목적지인 하동 야생차 문화센터 내에는 하동 야생차 박물관과 하동 야생차 치유관, 그리고 체험관이 있다. 치유관에서는 다도 관련 수업을 여러 가지 진행하고, 너울이 신청한 건 “하동 에피소드 티”라는 90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치유관 1층 카페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거실의 널찍한 유리창 너머로 건물 앞의 나지막한 산이 보인다. 그 낮은 산에도 구름이 내려앉아 있다. 풍경을 보다가 거실도 둘러보니 중국다기부터 유럽의 다기까지 다양한 다기가 비치되어 있다. 거실 왼편은 요가명상룸이 있고, 오른편이 우리가 다도 체험을 하게 될 티클래스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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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야생차 치유관 2층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발견한 직원이 화장실에서 가글을 하고 기다리라고 안내를 한다. 차를 마시기 전에 가글을 하는 건 박하 향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하고 갸웃거리며 가보니 화장실에는 남은 찻물에 소금을 탄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찻물을 입에 머금자 슴슴하게 짠맛과 녹차 향이 입을 향긋하게 맴돌았다. 차를 마실 준비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하동 에피소드 티”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나와 너울 뿐이었다. 티 소믈리에 선생님은 나와 너울, 선생님의 찻잎을 각각 다르게 준비해 오셨다. 소요시간이 긴 만큼 우전으로 시작해서 발효차, 블랜딩차, 말차까지 다양한 차의 종류도 맛보았다. 그리고 각기 다른 찻잎을 받은 덕에 숙우를 바꿔가며 같은 종류라도 전혀 다른 맛이 나는 차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너무 격식 차리며 진지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으면서도 무언가 따뜻하고 차분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하동의 차에 대해서 배우고 맛을 보았다. 먼저 차의 향부터 맡아보았는데 마른 찻잎과 젖은 찻잎에서는 전혀 다른 향이 났다. 우전은 구수하면서도 은은하면서 향긋한 풀 향이 살아있었다. 물이 닿은 찻잎은 자신의 향을 더 끌어올린다.


그리고 같은 우전도 제다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여러 번 덖어서 찬 기운을 많이 뺀 차와 녹차 본연의 향을 살리기 위해 두 번만 덖은 차는 맛이 확연히 달랐다. 전자는 녹차임에도 따스하고 구수한 맛이 났고, 후자는 향긋하고 깔끔한 녹차향이 잘 느껴졌다. 무엇이 더 좋다, 낫다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차의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첫 블랜딩 차 시음 시 내가 받은 차는 생강 홍차였다. 설탕에 절인 생강이 아니라 쪄서 말린 생강과 찻잎을 블랜딩 한 차를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한 모금 마시자 생강의 향과 차의 맛이 잘 어우러져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제까지 먹어본 블랜딩 차는 서양식으로 향을 주입(infuse)한 차였는데 찻잎과 다른 재료를 직접 같이 달여 먹는 방식의 블랜딩 차는 향의 깊이와 끝 맛의 깔끔함이 달랐다.


그리고 차뿐만 아니라 다식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티 소믈리에 선생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다식은 하나같이 정성이 가득했다. 집에서 직접 말리셨다는 반 건조된 대봉감 곶감은 겉은 곶감 식감에, 속은 감말랭이보다도 부드럽고 촉촉한 쫄깃하여 감의 조용한 향과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서 황홀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1층 카페에서 판매하는 밤 휘낭시에도, 직접 농사지으셨다는 찐 고구마, 재료 하나하나 선별하여 만드신 샌드위치 그리고 한 줌의 견과류까지, 차를 계속 마시다 보니 조금 버거웠던 내 속을 잘 달래주었다.


선생님께서도 하동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시기 전에 다양한 다도체험을 다녀보셨는데 연거푸 차를 마시는 것이 속에 부담이 되는 것을 느끼시고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차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셨다고 한다. 다식에서 선생님의 그 마음이 잘 느껴졌다.


하동에서의 첫 일정으로 다양한 차를 맛보니 카페인의 영향도 있는지 기분이 고조되었다. 단란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오전 프로그램과 달리 오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만석이란다. 너울과 나는 다도 체험의 감동과 함께 마셔본 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떠 차 판매장이 있는 체험관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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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A는 각기 다른 다기세트와 찻잎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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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잘 마실 수 있게 도와준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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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른 차를 내려 숙우를 바꿔가며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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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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