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은 시
과학을 품은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을 때 연필을 꺼내 들었다. 웬만해서는 밑줄 스티커 말고는 책을 읽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주제와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곱씹어 가면서 그의 말을 따라가야 했다.
과학은 왜 존재하는가. 슈리딩거는 현대 기술은 더 정교해졌고, 과학 분야는 더 세부화되어 분야 간 괴리는 더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통용되던 법칙이 무너지면서 근대 과학의 기반이 흔들렸다. 이 현상들을 보며 작가는 다시 과학의 존재 이유와 과학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하는 방식, 진실에 도달하려는 방법의 근원을 그리스 철학에서 찾는다.
고대의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을 이루는 물질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지구 너머의 행성까지, 다양한 분야의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세운 이론은 현대 과학에 비춰보면 터무니없는 오류도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 존재한다. 오히려 기술이 없었는데도 사고력 하나로만 어떻게 진실에 근접하게 도달할 수 있었을지 신기할 따름이다.
작가는 과학의 존재이유는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를 답하려는 노력이 집대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또는 더 나아가서 인간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슈리딩거는 우리가 답을 모르지만 과학이 그 답을 찾아가려는 노력이며, 어느 방향이던 갈수록 전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과학에게 바치는 시와 같이 아름답다. 진정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 없지만 학문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가지는 낙관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내 삶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양자와 물리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