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의 명제에 문학을 더하다
영화 콘택트(Arrival, 2016)를 보고 외계인과 조우하는 새로운 방식에 반했다.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유명한 만큼 어렵기로 악명이 높아 망설이다 어느새 기억 저 뒤편에 묻혔다. 지난 연말, 이따금씩 생각하던 이 책을 마침내 손에 얻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좋은 종이에 인쇄했는지 생각보다 묵직했고 타자기로 친 듯한 제목의 글씨체가 맘에 들었다. 표지는 SF 소설 다운 쿨톤의 파란색과 하얀색이었다. (때론 책을 읽기 전에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띠지와 겉장을 샅샅이 살폈지만 책이 어떤 내용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힌 상상력”,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한 엄청난 소설!”과 같은 문장들은 내가 과연 그의 소설을 읽고 이해해 낼 수 있을지 불안감과 의문만 증식시켰다 (읽기 전부터 서스펜스를 형성하는 책도 있다).
그리고 한 단어라도 놓치면 이해를 못 할까봐 꾹꾹 눈에 눌러 담아 가며 “바빌론의 탑”의 꼭대기에 도달하고 나서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책에 대한 수식어가 틀린 건 아니었다는 생각과 내가 이 책을 (설령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가장 평범한 결론이라도 풀어내는 방식의 아름다움을 좇아갈 수도 있고, 다른 책은 기상천외한 답으로 놀라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반면 테드 창의 소설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대해 치밀하고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답한다. 필립 K. 딕의 단편집 <마이너리티 리포트 (폴라북스, 2015)>는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가득했다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날실에 씨실을 한 올 한 올씩 교차한 후 팽팽하게 짜낸 직물 같다. 질문에서부터 답까지 빈틈이 없다.
1이 2와 동일하다는 걸 깨달은 수학자, 목적론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어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워가는 언어학자,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뇌의 기능을 정지시킨 사회의 구성원들. 이 외의 다른 단편들도 각기 다른 과학적 질문을 던진다. 분명 공학도가 만든 명제인데 문학적 아름다움이 넘친다. 이공계에서 출발한 이야기의 결이 낯설지만 유창한 소설의 언어로 다가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처럼 다 파악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