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마을과 박경리 문학관

삶의 이유를 묻는다면

by 도리

하동 여행에서 여러 가지 인상이 남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박경리 문학관에서 내려다보던 악양 평야이다.


우리는 무량원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토지마을에 갔다.


“밑에 있는 집들을 우선 둘러본 다음에 최참판댁을 봐야 돼. 그래야 차이점이 잘 보이거든.”

너울은 토지마을을 올라가다가 둘러 가는 길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토지마을은 소설 <토지>에 나오는 마을 풍경을 재현해 놓은 작은 한옥 마을이었다. 빨래터는 초가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한가운데에, 은밀한 일들이 벌어지는 물레방앗간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마을을 보존해 놓은 것만 같았다. 소설을 읽지 않은 나도 각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보며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초가집들을 지나 최참판 댁에 들어서니 우선 넓은 마당이 있었다. 마구간과 농기구들이 놓여있고 마당에만 아궁이가 두 개가 있었다. 마당을 지나니 사랑채가 나오는데 집이 높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사랑채에 누각에 올라가니 바람도 잘 들고 우거진 나무 뒤로 악양평야가 보였다. 아래에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을 넘어 보이는 풍경이 멋있어서 그 누각에서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그려졌다.


안채를 지나 별당에는 작은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채 한 채 지날 때마다 보니 아궁이가 한 두 개씩은 꼭 있었다. 밑에 초가집들이 아궁이가 하나였던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개수였다.


“부잣집은 다르네, 달라.”

우리는 웃으면서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박경리 문학관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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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토지마을에서 공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문학관 앞에는 박경리 작가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크기가 크지 않고 낮게 위치되어 있어 소박한 느낌이 있었다.


문학관 안에는 토지 초판본부터 다양한 판본들이 있었고, 박경리 작가의 인터뷰 기사들이 여럿 스크랩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영상도 있어서 작가의 생각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작가는 집필하는 동안 악양평야를 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문학관이 설립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1999년에 진행된 강연에서 작가는 자신이 문학관 설립을 반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틀 지우려는 행위는 곧바로 문학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창조성’의 파괴로 이어지죠.”

“삶 속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죠.”

“집착을 버리고 자아를 잡고 있는 모든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자유’입니다”

(기사 전문: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69)


삶의 본직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한 작가. 하지만 그 문학관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 덕에 작가에게 문학이란 무엇이었는지, 그는 어떤 삶의 방향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어 나로서는 너무나도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한다. 무언가 내 안에 것을 끌어내어 나와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 사람의 향기가 남아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삶은 고통스러울지라도 한 세계를 창조해 내고야 만 박경리 작가를 존경한다.


문학관에서 나와서 내려다보는 악양평야는 겨울 오후에 따뜻한 햇볕이 비추고 있어 환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겨울인데도 섬진강을 옆에 두고 펼쳐진 평야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마치 산들이 안고 있는 듯 산으로 둘러싸인 그 평야는 겨울에도 포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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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보게 만든 작가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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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서 쓴 원고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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