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은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by 도리

감명 깊게 읽은 작가의 책을 다시 읽는 건 때로는 기대보다 긴장감을 동반한다. 특히 10년 전 <연을 쫒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로 큰 감동을 주었던 호세이니의 책을 다시 읽으려니 그 감동이 그대로일지 몰라 맘편히 기대감을 낮추고 읽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빠져들 각오로 단숨에 읽어내릴지 고민했다.


오랜만에 읽은 그의 소설은 더 정제된 언어와 감정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지난 소설들처럼 빠져들듯이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파고드는 그의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소설을 머릿속으로 훓어보며 어떤 인물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지 생각해보면 개개인의 인생이 각각의 서사이면서 서로 얽혀있는 역사여서 파이처럼 툭 잘라서 글에 담기가 쉽지 않다. 어릴적 오빠 압둘라와 헤어진 파리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파리는 일적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고, 자녀들도 다 장성하고 나서야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느끼던 그녀의 삶의 부재가 인생의 정점이 다 지나고 나서야 밝혀진다. 하지만 평생 동생 얘기를 했던 오빠는 치매에 걸려 그녀를 더이상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파리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찾았잖아. 오빠가 이런 상태라도 괜찮아. 나는 행복해. 나는 잃어버린 나의 일부를 찾았어.” 그리고 처음 알게된 자신의 조카에게 말한다. “나는 파리 너도 찾았어” 라고.


삶은 언제 완성되는 것일까. 처음 하는 것들로 가득한 삶인데 우리는 그 처음을 너무 잘 해내려고 안간힘 쓰기도 한다. 처음 누군가와 사귀는 것도 처음하는 여행도 처음 아이를 낳는 것도 모두 낯선 일인데 때로 삶은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때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다 보면 파리처럼 모든게 말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때로는 삶의 소용돌이에 내던져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알기에 소설을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내 경험으로만은 채울 수 없는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앎을 더해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소설을 읽는 건 내 삶을 채워준다.


압둘라, 이거이 어째서 자비였는지 이해하겠니? 이런 기억들을 지워버린 그 약이 말이다, 악마의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데 대해 아유브에게 내려진 보상이었던 거다. |28


그러나 뭔가 다른 것도 어른거린다. 그 모든 것의 언저리에, 그녀의 환영 가장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어른거린다. 이것이 그녀를 가장 세게 끌어당긴다. 종잡기 어려운 그림자다. 어떤 형상이다. 부드러우면서 딱딱한 것. 그녀의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손. 그녀가 한때 볼을 댔던 딱딱한 무릎. 그녀는 그의 얼굴을 찾으려 하지만, 그녀가 그 얼굴을 향해 돌릴 때 마다 매번 빠져나간다. 파리는 구멍이 그녀의 안에서 벌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삶에는 평생, 큰 부재가 있었다. 여하튼 그녀는 늘 그것을 알고 있었다. |333


아델은 자신이 아버지를 전처럼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두툼한 팔에 안겨 행복하게 잠을 자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건 이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다르고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를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이겄다. 아델은 자신이 유년 시절을 건너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곧 자신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성인의 세계는 언젠가 아버지가 한번 영웅이면 죽을 때도 영웅이라고 말한 것과 흡사하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388


‘너는 결과적으로 잘 됐다.’ ’마르코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나는 지금, 쉰여섯 살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려고 평생을 기다렸다. 너무 늦은 걸까? 우리에게는 너무 늦은 걸까? 우리는, 어머니와 나는, 너무 오랫동안 유랑했던 걸까? 나의 일부는 우리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살아가고, 우리가 얼마나 서로한테 안 맞는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덜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때로는 말보다는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 모른다. 우리 사이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에 대한 어렴풋한 감지. 가슴 떨리는 감지. 그것은 회한만을 가져올 뿐이다. 회한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다.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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