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8편의 소설이 하나씩 통통 튀는 공 같았다. 지루할 틈 없이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소설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인데 주요 인물들이 작가다. 이 소설에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곰삭하다’라는 비평가들의 평에 질려버려 ‘곰’ 자가 들어가는 단어뿐만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동물 ‘곰’에 대해서도 노이로제를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단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도를 하는 과정도 정말 재미있지만 이 소설에서 구작가가 보여주는 한국어의 찰진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단편집의 8편의 소설 중에는 4편이나 작가가 인물로 등장한다. 책 마지막에 구병모작가는 의도적으로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소설의 인물로 등장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적는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피했다는 사실이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의 등장인물처럼 애써 피하고자 한 사실이 역으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것과 상통하는 점이 있어 웃음이 났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무관한 이야기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소설이라는 창작물에는 어떻게 윤리성이 적용돼야 하는가는 논의가 더 필요한 쟁점이지만, 그와 별개로 작가가 전혀 다른 성별과 나이대, 그리고 배경을 가진 사람을 인물로 내세우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구병모 작가의 말대로 작가를 인물로 내세우는 건 “자신이 그래도 발가락 하나 담가 보아서 조금은 알고 있는 세계의 단면을 그려”내는 것과 같아 “일종의 치트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작가, 즉 쓰는 자의 고충을 정말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이 소설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두 편의 소설을 꼽으라면 <어느 피씨주의자의 중생기>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이니까.
올해 읽은 다른 단편집인 전하영 작가의 <<시차와 시대착오>>는 모든 소설의 주요 인물이 창작가였고, 창작하는 직업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었는데 구병모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인 인물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구작가의 말처럼 그 인물들이 “쓰기 자체에 대한 거듭된 고민의 흔적”을 보인 것이라면 결국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그가 작가로 한층 더 성장하는데 꼭 필요했던 이야기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하나의 문장>>이라는 소설집의 제목도 의미 있다. 단편집의 제목은 그 단편집 중 하나의 단편의 제목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라 생각했는데 이 단편집의 8편의 소설 중 <단 하나의 문장>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없다. 작가가 제목을 이렇게 부 이유는 그가 문장 하나하나를 단 하나의 문장처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멀리 간 것일까.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 외에 너무 많은 추측을 담고 싶지 않지만 이 단편집의 구성과 마지막 작가의 말이 여러 가지를 가늠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독자로서 나의 감상이니 나도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