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우연히 가게 된 카페에서 나무에 관한 글을 읽었다. 한 나무가 썩어 밑동만 남겨져 있을 때, 옆에 있는 나무가 뿌리를 통해 자신의 영양분을 죽어가는 나무에게 전달해 준다는 사실. 죽어가는 나무는 그 영양분을 받아 점점 살아나게 된다. 나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를 하고 있다는 것.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슬픔과 기쁨과 같이 상반된 감정들이 섞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무가 나무만을 생각한다는 사실도 좋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하는 사실도 좋았다. 그 이야기는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사랑 같은 사실.
그 이후로 나는 죽고 싶거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무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인간이 아닌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는 나무를 생각한다. 나무는 인간을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생생해질 수 있다. 그게 좋다.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은 하나가 되고 싶었던 두 나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들이 강제로 한 나무를 베어낸다. 남겨진 나무는 생각한다. 자신이 이제껏 봐온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훼손이었고, 파괴였고, 폭발이자 비극이었다. 나무는 나무를 살려내기 위해 자기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주기 시작한다. 100여 년이 흐르자, 그루터기에 움이 텄고 다시 100여 년이 흐르자 줄기가 생겨난다. 하지만 하나의 나무는 수천 년의 세월만큼 컸기에 둘은 다시 서로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들이 다시 나타나 이번에는 큰 나무를 베어 간다. 작은 나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영양분은 한정적이었고 그렇게 나무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장미수와 신복일은 일화, 월화, 금화, 목화와 목수를 낳았다. 일화와 월화가 두 살 터울로 서로의 짝이 되었다면 목화와 목수는 이란성 쌍둥이로 늘 함께였다. 금화는 자신이 혼자라고 느껴졌다. 어느 날 금화와 목화, 목수 셋이 산에서 놀다가 나무가 쓰러져 금화가 깔리게 된다. 목화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산에서 내려갔고, 다시 돌아와 보니 나무에 깔린 금화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목수가 나무에 깔려 있었다. 금화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실종은 목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이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금화. 내가 언니 대신 죽을 테니 제발 언니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산에서 내려가던 금화의 모습은 언젠가의 우리의 모습이었다. 차에 치인 게 나였으면 좋았을 텐데. 쓰러진 엄마의 옆에서 다 흩어져 가는 얼굴로 읊조리던 이모의 모습. 구급차를 타면서 엄마 대신에 내가 아프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었다.
목화의 응답을 신이 들었던 것일까. 목화가 열여섯이 되던 해의 봄. 목화는 기이한 꿈을 꾸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가는 꿈에서 목화는 또다시 기도했다.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하는 도중에 수많은 투신 장면이 사라지고 단 한 사람이 보였다. 동시에 그를 받아서 살려내라는 어떤 음성을 듣게 된다. 목화는 그를 받아냈고, 그는 살았다. 목화는 시도 때도 없이 그런 꿈을 꿨다. 목화는 꿈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단 한 사람만을 살려낼 수밖에 없었다.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며 목화는 이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과 삼대에 걸쳐 능력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화는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가 ‘나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 ‘나무’에 대해 알게 된다면, 분명히 금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화의 죽음은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가까이 있었고, 대신 죽겠다고 기도했으며 사랑했기 때문에 목화는 오랫동안 금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 고등학교 시절의 단 하나뿐인 추억인 수학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어야 했던 아이들이 되돌아오지 못했다. 매년 열리는 축제의 거리에서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돌아오지 못했다.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 믿을 수 없는 죽음들.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에서는 수학여행을 가기 바로 전날의 하루를 보여준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시내에 모여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을 사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짝사랑하는 애를 떠올리며 절절한 발라드를 부르기도 하고, 친구를 쫓아다니는 스토커를 붙잡고 호기롭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세미는 하은이를 향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에 하은이의 모든 행동에 서운함을 느낀다.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과 같지 않은 것 같아서 슬프고 너랑 더 놀고 싶으니까 자꾸 억지를 부린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하은은 다리를 다쳐 빠져나간 병원비가 걱정이다. 그런 하은의 마음은 몰라주고 그저 함께 할 제주도의 풍경만 고집하는 세미. 영화는 그 하루만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다음날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주 힘들어했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죽음 앞에서 무력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애도하는 방식에 서툴다. 슬픔과 상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잠을 자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이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무는 나무를 생각한다. 나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것을 나눈다. 나무는 인간을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나무가 될 수 있다. 내가 나무가 되는 상상을 자주 했다. 내 옆에 있는 죽어가는 나무에게 나의 것을 주면서 살려내는 상상을 했다. 점점 자라나는 나무를 보면서 나무가 된 나는 기뻤을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행복했을까. 나의 것으로 점점 살아가는 너를 보면서. 더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목화는 살아가는 내내 살아있다는 사실이 죄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슬픔 속에 숨기려 해도, 환멸 안에 감추려 해도, 냄새처럼 기어코 드러나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의 그 ‘어쩔 수 없는 선명함’. <너와 나>에서 항상 세미와 함께 타던 버스에서 하은이 혼자 남겨져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차창이 햇살에 비추어 반짝이고 버스 안에서 울려 퍼지는 세월호 수색 작업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방송을 들으며 하은은 목 놓아 울게 된다. 너만 없다는 감각. 4월이 지나 여름이 왔고 모든 것들이 여름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다.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어쩔 수 없는 선명함.
이제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되고 싶다. 최대한의 내가 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선명함을 모두 껴안고 사랑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붙잡고 싶다. 슬픔과 절망을 더 잘 알고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하는 나무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은 결단코 나눌 수 없으니까.
사랑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사랑을 존엄하고 고귀한 것이라서 함부로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한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넘어 상대방의 행복만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진창에서 빛나는 것.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이다. 그래서 내 모든 마음을 사랑이라고 칭하고 싶었다. 살아가고 싶어서, 살아남고 싶어서. 내 모난 마음까지도 사랑의 힘으로 만들고 싶었다.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어야 했다. 도처에 깔린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사랑이 소진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위해 혹은 너를 위해 그리고 진창 같은 세상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광범위한 사랑론은 떠나간 이들의 몫까지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너와 나>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미는 기나긴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앵무새 조이에게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조이야. 나는 그 영화가 끝난 뒤에 그 음성을 되새겼다. 세미에게 사랑을 배운 조이는 끊임없이 읊조릴 것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나는 여전히 애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애도는 떠나간 이의 사랑을 되감기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배운 조이처럼. 당신의 사랑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남아있는 내가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단 한 사람만큼의 삶을, 단 한 사람만큼의 사랑을.
202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