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미래를 향하여

by muffyeon

소설을 읽다가 처음으로 울어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열아홉 살, 숨 막히던 입시가 끝나고 온몸의 긴장이 풀려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애정하지는 않았다. 그 시기에 김연수 작가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게 되었다. 처음으로 책을 읽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내가 문학을 사랑하게 된 날이었다.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소설가인 화자와 편집자 진호가 광화문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진호는 말한다.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 (p.27)

8년 전의 그날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8년 전의 나는 8년 후의 나를 선택한 것일지 모른다. 그날의 나는 내 앞의 세계를 바꾸었다. 문학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심은 눈앞의 풍경을 바꾸게 해주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후 9년 만에 출간된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면서 자주 소설집을 덮었다. 정말 좋다는 감각을 느끼면 그 감각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잠깐 책을 덮게 된다. 한 소설이 끝나면 책을 덮고 상상한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에 관해.


- 우리가 미래를 기억하기만 한다면.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슬프다. 나는 자주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상상을 한다. 너의 미래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다고 말해주는 상상. 그런 상상을 하고 나면 지금도 미래의 내가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다. 나의 미래는 조금 더 괜찮을 거다. 내가 미래의 나를 기억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외삼촌이 ‘나’와 지민에게 지민의 어머니가 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한다면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게 된다고. 미래를 기억하는 한, 우리의 슬픔은 괜찮아질 수 있다.


- 네가 살아 있다면 맞이했을 미래의 모습까지 기억할게.

막지 못한 참사, 즉 불행한 과거의 슬픔은 현재의 우리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그런 선명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네가 없는 미래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와 ⌜사랑의 단상 2014⌟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네가 보지 못한 너의 미래까지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는 과거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기억해야 한다.

두 소설 모두 세월호에 관한 애도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사랑의 단상 2014⌟ 리나와의 연애가 끝난 지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애는 끝났으나 그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훈이 웹사이트 검색창에 “사랑해”라는 말을 검색하자, 그 말이 포함된 기사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그 기사를 읽고 깨닫는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기사에는 세월호 피해자에게 보내는 유가족들의 보낼 수 없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에서는 1년 전 희진이 제주도를 가기 위해 탔던 여객선이 침몰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서 희진은 한 남성을 만나게 된다. 그 남성은 10년 전에 죽으려고 결심한 순간, 우연히 방문한 카페에서 그녀가 두고 간 시디 속 음악을 듣고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을 떠올리며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p.181)


미래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 로 소설집의 처음을 열고 버티고 버티다가 새로운 삶을 나아가는 이야기(⌜난주의 바다 앞에서⌟, ⌜진주의 결말⌟), 상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엄마 없는 아이들⌟) 가 차례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금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사랑의 단상 2014⌟)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은 첫 번째 소설과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미래를 기억하고 그 미래의 낙관을 꿈꾸자고. 나는 이 소설집의 흐름과 구성이 정말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와 편집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랑은 미래를 낙관할 수 있으며, 그 낙관은 바꿀 힘이 되어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한 미래는 정말 이토록 평범한 것일 거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미래를 보고 있다.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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