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묻다 2
경험주의가 증명한 것은 다름 아닌 [철학의 실패]였다.
일전에 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사실 데카르트 이래로 근대철학이 집대성된 데에는 흄의 역할이 컸다.
근대철학의 설정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의심할 수 없는 원리에서 시작하여, 그 의심할 수 없는 원리를 나와 대상의 관계, 대상과 대상의 관계로 외연을 확대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사실과 진리에 이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흄은 이에 대하여 그러한 생각의 주체마저도 습관적인 인식의 다발이라고 하였고, 흄의 이러한 관찰과 비판으로 인하여 근대 철학자들은 그야말로 불가지론으로 치다를 수밖에 없었다.
[철학의 실패]가 잠자던 칸트를 깨웠다.
그런데, 흄의 비판을 통해 '독단주의의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칸트였다.
칸트는 이미 해체되어버린 '주체'를 다시 복원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의 주체를 부인하거나 그 주체가 추구하는 진리까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칸트는 초심의 마음으로 사람이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다시 물었다.
그리고 칸트는 [사람은 단지 형상을 인지할 뿐, 그 형상이 참으로 인지된 것과 동일한지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였지만, 그러한 동의에서 머물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사과를 보고 사과처럼 인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물을 판단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진리는 대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 형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어 놓았고, 그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명명했다.
잠에서 깨어나니 괴로웠다.
이후 칸트는 여러 가지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식된 현상이 사물 자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고, 또한 그러한 연관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하여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반론이었다.
즉, 반론에 따르면, 판단 형식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진리라는 것도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오인해버린 선험적 오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철학이란 모르는 것을 추구하는 우문에 불과하였나?
그렇다면, 우리 혹은 인문학은 '내가 보는 이것은 이것이야',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야', '내가 갈 길은 이것이야'라고 사유하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그것을 근거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판단의 대상이 된 그것 자체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