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삶의 얕음 혹은 깊음

by 시인 손락천

그냥 걷는 것이 낫겠다 했다

그것도 맨발이면 좋겠다 했다


발바닥에 짓치는 흙 알갱이 함성

발가락에 걸린 돌멩이 재잘거림


편하자고 걸친 껍데기 훌훌 벗고

민낯으로 생명의 근원 마주하고 싶다 했다


껍데기를 벗으니 벗을 수 없는 껍데기가 있다

껍데기는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며, 블록이며, 송곳처럼 짓치는 통증이며

외지로 쫓기고, 피 칠을 하고서야 너를 만났다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힘겨운데

너와 맞닿은 내 근원은 너를 느껴야만 살겠다 한다


- 손락천 시집 [까마중] 중에서




나는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등지고 귀가한다. 살면서 한 번도 호흡을 멈추어 본 적이 없건만, 내 호흡이 이렇게 뜨거운 것이었는지를 이제야 안다. 집에 가면 자박한 물에 된장을 풀고 듬성듬성 설은 호박과 파를 넣은 된장 백반을 해달라고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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