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쓰다
혼자 산다.
TV가 없는 방에서 지내게 된 것은 지난 2001년 10월 한일건설에 입사하면서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서울교대 근처의 지하 고시원에 잠시 기거하였던 한 달 이래로 이번이 두 번째다.
퇴근해서 미니 투룸에 들어가면 세면과 청소를 한 후 잠시 동안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것 외에는 계속해서 글을 끼적인다.
무작정 시간을 죽일 수야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자정이고, 조금 더 깨어 있을까 생각하면 어느덧 깊은 새벽이 되고 만다.
삶은 교차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았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하나를 뽑아 마시기가 부담스러웠던 나였는데, 회사생활을 한 이래로는 먹을 것에 부담스러웠던 적이 없고, 대구로 내려온 후에는 그럴듯한 집에서 토끼 같은 딸과 여우 같은 아내와 살았다.
부족한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부족한 것이 더 많이 보이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제 막상 가족과 떨어져 방 한 칸 거실 겸 주방 한 칸의 미니 투룸으로 거처를 옮기고 보니, 청소도 5분이면 끝났고, 빨래도 채 건조대 하나를 채우지 못할 만큼의 분량뿐이며, 먹는 것도 그렇게 단출할 수가 없어 설거지거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수준이다.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은 남들 보기에 번듯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허위의식이 가려져 있었고, 그래서 먹고사는 것 이상의 큰 것을 욕심내어 불평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일할 곳이 있고, 먹고살 것이 있으며, 가끔씩 딸에게 나누어 줄 행복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사실을, 그러한 삶과 사랑은 큰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덤으로 찾아온 것이 여백의 시간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하여야만 떨칠 수 있었던 불안감은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TV가 없는 지금,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지금, 공백의 시간은 오롯이 글로 채워지고, 비로소 내가 이토록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를 알게 된다.
물어보았다.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왔던가를 물어본다. 주저앉지 않기 위해 달려왔던 길을 돌아보며 무엇 때문에 주저앉기를 그토록 두려워했던가를 다시 묻는다.
스스로를 모른 탓이다. 내가 누구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였기에 항상 무엇인가에 조바심을 내며 시간을 죽이지 않으려 시간을 죽여 갔던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후회와 희망이 공존하며 깊은 흑암에 수면 위를 걷던 태초의 열망, 그 언저리에 비로소 선 것이다.
사랑하는 나를 위하여,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다시 사는 삶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