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 손락천 Apr 21. 2017

운명이다

산다는 것

나는 지금 실패한 것과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 사이에 산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아들, 좋은 가족, 좋은 사무장, 좋은 친구, 좋은 글쟁이.


 자리한 곳에서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몇몇은 이미 실패했다. 그래. 나는 지금 실패한 것과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 사이에 산다.


 성공만 있는 인생은 없겠지만, 내 삶은 아무리 변명해보아도 썩 좋았다고 할 만한 인생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벗어나야 될지 모르는 바다에 빠진 느낌이다. 성격대로라면 빠지기를 두려워하여 바다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인생이고 운명이다. 운명이 있으리라 믿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는 태생 자체가 운명론자였을 수가 있다.



무릇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하늘만이 알 수가 있다.



 이 바닥에 와서 처음으로 맡았던 사건이 무속인의 사건이다. 그는 점쟁이였고, 사기죄로 기소가 된 사람이었다. 그의 공소장을 보면 ‘무릇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하늘만이 알 수가 있는 것인데’라고 시작한다.


 그것이 공소장으로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서두였음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하늘만이 아는 것이 내 운명이다. 나는 물론이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내 운명이다. 그래서 나는 다만 이대로 흐를 것이다. 무엇에도 거스르지 않은 채로 흐를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질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