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일, 사람의 일 1-1
1부 하늘의 일, 사람의 일
1-1
온기를 잃은 바람이 서늘하다. 벌써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을 계절이 다가온 탓이다. 일호는 창 너머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끝을 찡그렸다. 그리고 일호의 눈에서 그의 고민이 깊이 묻어났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던 걸까? 언제부터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던 것일까?’
한국철도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 벌써 2년 전 가을이었다. 한국철도공사는 구미역사를 크게 확장하여 단장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유수의 건설업체에게 공사를 맡겨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그 위에 후면광장을 신축하기로 했고, 구미역사는 3층 건물로 올려 갖가지 상업시설을 들이기로 했는데, 3년이 지나도록 공사가 지지부진했다. 문제는 돈이었고, 그래서 일단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는 구미역사의 상업시설을 운영할 임대사업자를 선정해서 그 업체로 하여금 상업시설을 운영하게 하는 한편, 자신들은 임대수익을 거둬 자금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심산이었던 게다.
일호는 호남 사람이다. 경상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지역감정으로 인해 선뜻 경상도, 그것도 박정희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구미에 발을 붙이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일호에게도 한국철도공사가 구미역사의 상업시설을 운영할 사업자를 공모한다는 것은 쉽게 눈을 돌릴 수가 없는 유혹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일원이나 다름없는 굴지의 공사와 사업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한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일호는 서브프라임이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철도공사가 공모한 구미역사 상업시설 임대사업자 공모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했다. 보증금 300억 원에 상업시설을 임차하여 운영하되, 다만 그 편의시설인 지상주차장을 책임지고 완공하기로 한 것을 골자로 한 사업제안서였다.
그리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국철도공사가 사업제안서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일호는 단숨에 서브프라임 주식회사의 이름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었고, 얼마 후 임대사업자로 선정되어 구미역사 상업시설에 대하여 한국철도공사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살면서 그렇게 좋았던 날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던 그날은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은 날이었고, 밤잠을 설치던 날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것은 괜한 옛사람의 넋두리가 아니었다. 이 임대차 계약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호에게 가장 큰 우환 거리가 되고 말았다.
일호는 둥그레 살집이 올라 덩치가 있었지만 물렁한 체구가 아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에 크게 뭉근 코 자락이 웬만하면 싫은 소리 없이 할 일을 하고야 마는 고집을 드러낸다. 빠르지 않은 말투에는 온화하지만 매운 고추의 끝 맛이 묻어난다. 한마디로 일호는 악의가 없지만 여간해서는 대하기가 힘든 사람이라는 냄새를 온몸으로 풍기는 사람인 게다.
“어이가 없지요. 내가 30억 원의 사비를 들어 지상주차장을 짓겠다고 했고, 그놈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일호가 입을 뗐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조금씩 끊어 마신 후였다. 아마 일호는 입 밖으로 꺼낼 말을 속으로 곱씹었던 게다.
“그런데, 지상주차장은 무슨. 그놈들은 처음부터 지하주차장을 짓고 그 지상에 역사 후면 광장을 짓기로 했던 겁니다. 공사비만 무려 80억 원에 가까운 공사였던 게지요.”
일호는 단단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주차장을 짓기로 하면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그 지하주차장에 후면 광장 공사를 떠맡아 책임지고 해야 한다니. 무슨 그런 사기가 있소!”
“그래 뭐 다 좋다 치고. 내가 지하주차장과 후면 광장을 짓기로 했다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구미역사 상업시설은 또 뭐란 말이요. 왜 내가 그 남은 잔여공사까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일호가 무언가 강하게 냄새가 나는 임대차 계약을 했고, 그래서 임대인에게 끌려 이것저것 덤터기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아직은 일호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한다. 원래의 성격대로라면 무작정 말을 끊고 내가 묻고 싶은 부분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겠지만, 왠지 지금 이 상황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생명인 임대사업이어서 일단은 내 돈을 들여 상업시설에 대한 잔여 공사비를 부담했다손 치더라도 그 공사비는 자기들 공사인데, 당연히 내가 쓴 공사비는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요?”
구미역사 상업시설 3층은 뜨거웠다. 11월에 무슨 난방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느껴진 것은 아마 사무실을 가득 채운 생경한 열기 때문이었던 같다. 일호는 무척 억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으레 그러한 사람들이 취해왔던 모습과는 영 딴판인 모습이었다. 억울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은 당당한 모습, 실패한 것 같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은 것 같은 태도. 내게는 무척이나 낯설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이상한 열기에 휩쓸렸다.
“그래요. 일단 면밀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임대사업자 공모 모집서와 사업제안서, 그리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서와 우선협상 내용을 준비해 주세요. 또 지상주차장이 아닌 지하주차장으로 결정된 구미시의 사업계획 승인과 그에 대한 서브프라임과 한국철도공사와의 회의록, 그리고 지하주차장 건축과 관련한 공사도급계약서와 역사 사업시설과 관련한 잔여공사 도급계약서 및 지급한 공사비 내역을 정리해서 주세요.”
나는 이야기를 더 들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말을 끊었다. 이 사건은 선임을 해서 진행해야 할 사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의뢰인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의뢰인의 말보다는 문서화된 서류를 먼저 살펴본 후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것이 향후의 소송에 더 충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은 이 공간의 낯선 열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열기에 동화되어가는 것 같았고, 이래서는 냉철하게 사건을 분석할 수가 없다. 의뢰인에게 동화되는 것은 소송에서 큰 패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은 격한 분노의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증거로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의뢰인을 위한 길인 게다.
“이 자리에서 모든 사항을 체크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 서류를 준비해 주시면 변호사님과 상의해서 소송 가능성에 대한 가부를 결정짓도록 하지요.”
나는 소파에 엉덩이만 걸친 채 깊숙이 테이블에 묻었던 몸을 그제야 곧추 세웠다. 내가 이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말은 그것까지다. 무려 100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소송이다. 섣부른 동조는 독이 된다.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일호와 악수를 하고 완성되지 아니한 구미역사 상업시설에서 나왔다.
마음이 영 찜찜했다. 이미 임시사용승인을 받아 그 일부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 불안한 구미역사 상업시설. 그 불안한 상태만큼이나 이상한 열기를 뿜던 일호의 모습과 말투가 어떤 불안한 운명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뭔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어. 그러나 딱히 잘 될 것 같지는 않아. 상대가 한국철도공사이니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기 쉽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끝날 것 같은 사건도 아니야.’
나는 사무장이다. 변호사의 세계에서 사무장이란 늘 그렇듯 별 볼일 없는 존재다. 모든 소송은 변호사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그 책임 역시 오롯이 변호사가 책임질 뿐, 사무장이 그것에 관여할 구석이 없다.
다만 사무장은 사건을 검토하고 서면을 쓰고 소송을 준비하면 그만인 것이고, 그 소송에 이름 석자 기록될 여지란 것은 처음부터 없다. 한마디로 사무장이란 존재는 그냥 법조 3륜에서 박봉에 이름 없이 떠돌다가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발을 디딘 곳이 여기이기에 고민을 할 뿐이다. 나의 고민이 아닌 의뢰인과 변호사의 고민을.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동화되어 마치 나의 고민인 것처럼 고민하고야 마는.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열심히 할 것이면서, 그리고 나름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괜한 넋두리를 했다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