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혼미한 정국
1907년 4월 중순 대한매일신보사로 제2차 만국평화회의 개최 소식이 접수되었다. 양기탁은 이 소식을 신민회 간부들에게 알렸다. "일본의 침략행위를 만국에 고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요." 간부들은 상동교회 청년회장 이준을 앞세웠다. 이준은 밀사 파견에 대한 고종의 윤허를 받아냈다. 황제 고종은 이상설을 특사로, 이준(1859~1907)을 정사로, 이위종(1884~?)을 부사로 3인을 파견했다. 당시 이준은 국채보상운동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상설은 북간도로 망명 중이었다. 이상설(1870~1917)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나 1894년 과거에 급제하여 1896년에 성균관 관장과 교수를 지냈고, 한성사범학교 교관과 탁지부 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궁내부 특진관에 승진한 탁월한 지식인이었다. 을사늑약 이후 민영환의 자결 소식을 듣고 자신도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이상설은 1906년 봄에 이동녕, 정순만 등과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동지들과 함께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애국청년들에 대한 교육 사업을 전개하던 중, 고종의 밀명을 받들게 된 것이다. 이위종은 아버지 이범진과 러시아에서 활동 중이었다. 이범진(1853~1911)은 고종의 아관파천과 친러내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범진은 1897년에 주미공사, 1900년에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공사를 겸한 러시아공사였다. 을사늑약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이범진을 소환했으나, 이에 불응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권 회복 운동에 전념하였다.
헤이그에서 서로 만난 밀사단은 1907년 6월 29일 평화회의장 참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이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라며 독자적인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방해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거짓으로 특사를 칭했다는 이유로 3인을 즉각 재판에 회부하고,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폭거였다. 이완용 내각은 이들이 참석하지 않은 궐석 재판에서 이상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준과 이위종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7월 14일 저녁, 화를 이기지 못한 이준이 자결했다. 이위종은 만국 기자협회에서 ‘을사조약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버지 이범진이 마련한 독립자금 1만 루블을 들고 연해주로 망명했다. 당시 이위종은 러시아 남작의 딸과 신혼 중이었으나 이혼하고 연해주로 갔다. 이위종은 연해주에서 최재형, 이범윤 등과 의병부대 동의회를 결성했다. 이위종은 일찍이 해외에서 무관 교육을 받은 엘리트 장교였다. 이상설은 이준의 장례를 치른 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등을 순회하면서 일제의 조선 침략의 불법성을 알리는 등 특사 외교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북미로 탈출하여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일본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이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 일을 빌미로, 7월 20일, 고종을 퇴위시키면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그리고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천인공노할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제히 궐기했다. 이것이 정미 의병 전쟁이다.
서울 남대문 거리에서도 시가전이 벌어졌다. 일본군 총에 맞은 부상병들로 일대는 피바다를 방불케 했다. 이 광경을 본 안창호와 정영도, 그리고 김필순의 여동생들과 조카들은 무차별로 죽어가는 젊은 군인들을 세브란스병원으로 호송하여 김필순의 치료를 받게 했다. 이때 안중근도 안창호와 합세해 부상병 호송을 도왔다.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 안창호는 부상병을 등에 업었다. 안중근도 부상병을 부축하며 분노로 소리쳤다. “이토 이놈, 내 이놈을 처단하겠소. 감히 동양 평화를 운운하다니...!”
안중근이 흥분한 채로 안창호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형님,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는 형님 말씀이 딱 들어맞고 있습니다. 놈들의 만행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안창호가 잠시 가쁜 숨을 돌리며 말했다. “놈들이 쏴대는 고성능 총을 당해낼 수가 없구려. 우물쭈물하다가 다 죽게 되었네.”
“형님, 전쟁 준비는 무기 기술부터 발전시켜야 하는가 봅니다.”
안창호가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니 산업과 기술을 일으키고 교육을 해야 하네. 군사를 양성해야지...!”
안창호와 안중근은 김순애와 김마리아가 끌고 온 달구지에 부상병을 실었다.
김마리아가 잠시 안창호를 반기며 말했다. “선생님, 부상병들은 필순 삼촌께 이송하면 되지요?”
“오, 그렇게 하게. 피를 저렇게 철철 흘리고 있으니 잠깐만, 지혈을....”
안창호가 쩔쩔매고 있는 사이에 김필례가 흰 천을 가방 주머니에서 꺼냈다.
“선생님, 여기 오빠가 준 붕대를 챙겨왔어요.”
“오, 필순이. 역시...!” 안창호는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뱉었다. 안창호는 이때 적십자 구호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가슴에 새겼다. 훗날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한 안창호는 시정방침 중의 하나로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대한적십자회를 재건하고 간호양성학교를 세웠다. 이 일에 김필순의 여동생 김순애가 앞장섰다.
부상병 이송과 치료로 혼란한 와중에, 안창호와 김필순은 전면에 나서서 지휘하고 있는 안중근이 걱정되었다. 일본군에 이미 많이 노출되었을 것이다. 안창호는 안중근이 여기서 놈들에게 잡히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안창호는 안중근에게 피할 것을 권했다. “중근이 자네는 이곳을 피하게. 아무래도 위험하네.”
“여길 놔두고 제가 어딜 간단 말입니까?” 안중근이 소리쳤다.
안창호가 설득에 나섰다. “자네는 의병들을 모아 후일을 도모해야 하네. 여기 이 사태는 어차피 우리가 감당하게 될 걸세. 필순과 내가 앞장서겠네. 이토의 무례함을 눈앞에서 겪어야만 하다니!”
안중근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함경북도 쪽으로 가서 흩어진 의병들을 모아 후일을 도모하겠습니다.”
안창호는 안중근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처럼 소리 죽여 말했다.
“그게 좋겠네. 연해주로 넘어가게 되면 일단 공립협회 이강 동지를 만나게. 나도 상황을 봐서 북만주나 연해주로 넘어갈 생각이네. 거기서 만나세.”
안중근은 안창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길로 강원도와 함경북도를 거쳐 의병투쟁을 하면서 연해주로 망명했다.
안중근(1879~1910)은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아버지 안태훈은 해주 진사로 개화당 활동을 했다. 동학 농민군이 북상하자 해주 감사는 안태훈에게 토벌대를 조직하여 이를 막으라고 명령했다. 안태훈은 이 명령을 따랐다. 15살 된 안중근은 아버지를 도왔다. 이듬해 안중근 가족은 천주교로 입교했다. 을사늑약 이후 안중근은 상해로 갔다가 아버지 사망 소식에 귀국하여 삼흥학교를 세우고 교육 운동에 나섰다. 또 국채보상운동 관서지부장을 맡아 애국 운동을 하던 중, 안창호의 독립전쟁 준비에 관한 연설을 듣고 이에 동감하며 안창호와 친교를 맺었다.
안창호와 안중근 두 사람에게 국권 회복은 곧 공화국 건설이고 민주와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전쟁 준비가 필연적이며, 이는 동양 평화를 깨고 있는 일본제국의 무력을 능가하는 근대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에는 산업자본의 형성과 문무쌍전의 전술을 겸비한 인재교육, 그리고 국제 여론을 선도하는 외교능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했다. 두 사람에게 극동의 평화는 하루속히 문명개화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순교 정신에도 두 사람은 뜻을 같이했다.
1907년 10월 초, 마침내 안창호와 이강은 상동교회에서 만났다. 그동안 두 사람은 각자 긴박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은 주변 남산 길을 걸었다. 정영도가 멀찍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안창호가 물었다. “김성무 동지는 떠났소? 만남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 아쉽소.”
이강이 말했다. “황해도 안악에서 국어 사범강습소를 시찰하고 『대한문전』 교재를 알아본다고 하더이다.”
안창호는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밀산 기지에서 우리 말 교육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구먼. 경영감독관에 대한 책임 의식이 남다릅디다. 기지 개척 의지도 대단하고....”
이강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어려도 도전정신은 최고요. 낯선 밀산에서 잘 해내리라고 믿소.”
안창호는 김성무가 안쓰러웠다. “어떻게든 지원해야 하는데.... 내 투자자를 반드시 물색할 것이오.”
이강이 화제를 바꿨다. “도산, 가는 곳마다 도산의 연설이 감동적이라고 합디다. 독립전쟁을 위한 각오들이 새로운 것 같소. 군대해산을 당하니까 열기가 더 무르익는 것 같더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군대해산이라니 도대체 말이나 되오? 밀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해산까지...! 결국, 힘으로 나라를 삼키겠다는 것 아니오?” 안창호는 흥분했다.
“이미 나라 뺏기 순서를 밟고 있다고 봐야지. 저들의 힘을 빼야 할 터인데....” 이강이 차분하게 말했다.
“힘 빼기라....” 안창호가 그 말을 음미했다.
“그렇소. 힘 빼기!”
“어떻게?”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 안창호가 이강에게 물었다. “정래, 자네가 여기로 잠입해 온 이유나 들어보세. 공립협회 지도부들이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
이강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대답했다. “숙청단을 조직했소. 차병수 형님을 중심으로 김병록, 이재명 등 젊은 동지들이 뜻을 모았소. 이들도 속속 국내로 들어올 것이오.”
안창호는 짐작이 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음, 이토 숙청도 계획에 있겠군.”
이강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물론이오. 기회가 만들어지는 대로 을사오적 놈들과 같이 처단해 나갈 것이오.”
안창호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토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통이 계속 오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번은 만나야 할 것 같소.”
이강이 놀라며 되물었다. “왜 하필 도산을...?”
“아마 내 계몽 연설 때문일 거요.” 안창호의 말에 이강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쳐다보았다.
“도산을 설득하려고? 하하. 이토가 상대를 잘못 골랐군.” 이강은 어이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
안창호는 이갑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리를 놓고 있는 사람들한테 화가 미칠 것 같으니 어쩌겠소? 한 번쯤은 그들의 청을 들어줘야 할 것 같소.”
이강이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토는 동양 평화를 위장하고 있는 교활한 인물이오. 어느 순간 누군가에 의해서 꼭 처단되고 말 거요.”
“맞는 말이오. 힘 빼기! 여기서도 기회를 보리다.” 안창호는 화제를 바꾸어 이강에게 안중근을 소개했다. “참, 연해주에 도착하게 되면 꼭 만나야 할 인물이 있소. 해주 출신 안중근이오.”
“안중근이라....”
“훌륭한 인물이오. 독립전쟁 준비에 뜻을 모았소. 군대해산 때 왜놈들에게 많이 노출되었소. 내가 그에게 연해주 망명을 권했소. 아마 지금쯤 함경도를 지나면서 의병 세력들을 규합하고 있을 거요.”
“음, 알겠소. 내 꼭 챙기리다. 아 참, 내 연해주로 가면 물주를 찾아서 신문을 만들 계획인데, 소식통에 의하면 교민단에서 『공립신보』 지국을 개설했다는군. 아주 인기라 하오.” 이강이 말했다.
안창호는 웃음을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이 국내 사정이 얼마나 궁금하겠소. 여기서는 『대한매일신보』가 그 책무를 다하고 있소. 양기탁 선생과 신채호의 논설은 정말 최고요. 음, 그래서 언제 떠날 거요?”
이강은 날짜를 못 박지는 않았다. 그러나 숙청단이 준비되면 곧 떠난다고 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