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멕시코 사정과 한인 지도자들 (하)
1918년 3~4월 안창호와 곽림대는 코앗사코알코스와 멕시코만 연안을 중심으로 한인들의 어업현장을 순회했다.
“프론테라지방회가 회관까지 마련했으니 흥사단 동맹수련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할 텐데. 곽총무는 어찌 생각하오?” 안창호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젊은 동지들의 열정과 결속이 관건이겠죠. 북미실업회사 투자에 대한 관심이 많던 데요.” 곽림대가 말했다.
“메리다에 은행이 없다니 걱정이 되오. 동맹 모금 관리를 북미회사에 투자하여 토지 매수를 권해보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소. 아무래도 최선은 북미회사의 주주가 되는 것이오. 미국을 떠날 때 송종익과 약속했다오. 멕시코 한인 주식 2만 4천 원을 내년 4월 말까지 만들어서 회사에 입금하기로 말이오.”
“북미실업주식회사가 이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가지고 국경지대에 토지를 마련하고, 한인 모범촌을 형성해서 살 수 있도록 하시려는 거지요?” 곽림대는 안창호의 의중을 꿰뚫고 있었다.
“음, 고종황제의 꿈의 일부이기도 하지요....” 안창호는 무심하게 대답하면서 스스로 고종황제에 대한 연민을 품었다.
“네에?” 곽림대는 안창호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창호는 곽림대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하하. 차차 얘기합시다...!”
“멕시코 토지는 당국과 교섭하는 일이 큰 과제일 것이오. 현재는 반미정서로 쉽지 않을 테고. 자체 실업회사를 일으키도록 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거요.” 안창호는 시간이 오래 걸리리라 예상했다.
“미국에 있는 중앙총회가 동맹저축금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동포에게 신용을 잃게 되겠지요. 지도자들과 의논하시지요.” 곽림대가 말했다.
“그래서 멕시코에 흩어져 있는 국민회를 통합해서 메리다지방회에 총회를 설치하는 것을 의논하는 중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미주의 부담도 덜할 테고. 자치 경영이 최고 아니겠소?” 안창호가 대안을 이야기했다.
“그렇긴 하지요.” 곽림대가 힘없이 대답했다. 멕시코와 미국의 대립 관계가 마음에 걸렸다. 하와이는 그런 염려는 없었다.
안창호가 문득 곽림대에게 물었다. “곽 총무, 샌프란시스코에는 별일이 없었소?”
“있었습니다. 아직 총회장님께 보고를 못 드렸습니다.” 곽림대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오, 무슨 일인데 그러오?” 안창호는 가슴이 철렁했다.
“총회장님 부재중에 이승만 씨의 일방적인 연락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내용인즉, 1917년 10월 29~31일 뉴욕에서 소약국동맹회가 개최되는데 하와이국민회가 박용만을 대표로 파송하기로 한다고. 미리 상의를 못했노라고!”
“음, 소약국동맹회라. 윌슨의 자결권 영향인가? 박용만을 파견한다. 거, 잘됐소. 박용만이라면 안심이 되오.”
곽림대가 말했다. “박용만은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여 25개국이 참가한 회의에서 ‘세계자유민주주의 실현에 일본은 매우 위험한 나라’라고 지적하고 ‘약소국에 정당한 생존권을 주지 않는다면 세계에 항구적인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명연설을 했답니다.”
“오, 역시 박용만 동지답소. 약소국 호응도 컸을 테지요.” 안창호는 안심이 되었다.
“미국 신문에도 실렸답니다. 이대위는 12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 회관에서 환영식과 보고연설회를 개최했습니다.”
“아주 잘한 일이오.”
“소약국동맹회의는 올해 12월에도 열린답니다.”
안창호는 곽림대의 보고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승만. 그는 이를 기회로 삼을 것이다. 박용만 파송에 예상외로 2천 달러 이상을 모금했으니 앞으로도 독단적 결단으로 외교에 치중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터. 견인이 필요하다. 올해 12월 회의에는 민찬호와 정한경을 이승만과 같이 대표로 파견하자.’
곽림대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십니까?”
미국의 1차 세계대전 개입과 윌슨의 자결권 14개조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 하느님. 우리 민족을 구원하소서.’ 안창호는 마음이 바빠졌다.
“저것 좀 보시오. 멕시코인들이 외치는 ‘비바 코리아’ 소리가 정겹소.” 안창호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해안가를 가리켰다.
곽림대가 그곳을 쳐다보니, 한인들이 어망을 해안가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멕시코인들이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서 지켜보기로 했다. 멕시코 주민들과 한인들이 서로 돕는 모습이 정겨웠다. 한인들은 멕시코인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어망의 물고기를 집어서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부의 후한 인심이 느껴졌다.
“이근영 동지 말로는 어업으로 성공한 이들이 꽤 된다고 했는데 그럴 만하오.”
“그렇군요. 본디 우리 민족은 품앗이에 익숙하지요. 나눔의 맛을 아는 공동체 정신 말입니다.” 곽림대가 말했다.
“무실역행의 정신, 정의돈수지요!”
“그런데 작업환경이 너무 지저분합니다. 악취가 나네요.”
곽림대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변소가 없었다. 어촌 마을 한인의 집에도 변소는 없었다.
“하하. 우리가 화장실 하나 지어주고 이동할까요?”
“네?”
곽림대가 잠시 당황하는 사이, 안창호는 한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인사하며 말을 붙였다. 그리고 변소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 물고기가 한인들을 쫓아다니나 보오! 고기가 잘 잡히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딨소? 그런데 여러분은 용변을 어디서 보는 거요? 아무리 찾아도 없구려. 이러다간 해안가가 모두 변소가 되겠소이다. 물고기가 악취에 놀라 도망갈까 걱정되오. 하하하.”
안창호의 말에 어부들이 할 말이 없다는 듯 멋쩍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땅을 파기만 하면 되는 일을 왜 안 하는 것이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들 아니오? 변소를 지어 보오. 아니, 변소를 지읍시다.”
누가 봐도 안창호는 지도자였다. 보고 있던 곽림대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러분의 사정을 살피러 온 국민회총회장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이분이 그란 마에스트로?”라고 중얼거렸다.
“소문에서 들었던 민족의 지도자 선생이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창호는 즉석에서 연설을 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겨 우리가 멕시코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속기까지 해서 이 먼 유카탄까지 와서 노예노동을 4년 동안이나 한 것 아닙니까? 어찌 되었건 이제 계약에서 해방되어 맘 놓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니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후한 인심을 베풀며 멕시코인들과 정겹게 지내고 있습디다. 본디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를 빼앗는 나라도 아니고 남의 것을 탐내어 도둑질하는 사람도 없소. 그저 소처럼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서 정을 나누던 민족이오. 나는 여러분이 민족적 자존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조선의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생활을 개조합시다. 청결하게 주변 환경을 가꿉시다. 언젠가 조국이 독립하면 우리가 피땀으로 일군 재산을 가지고 당당하게 돌아가서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갑시다. 나는 내 고향 평양을 꼭 가고야 말 것이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독립운동을 해야 하고 멕시코에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당장 변소부터 지읍시다!”
안창호의 연설을 들은 한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맞소. 선생님 말씀이 맞소.” 그러면서도 머뭇거렸다.
“삽을 가져 오세요. 내가 땅을 파리다!” 안창호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람들은 놀랐다. 미국의 한인 지도자 ‘그란 마에스트로’가 손수 삽을 들고 변소를 짓기 위해 땅을 파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마침내 항만이 가까운 사람들의 밀집 장소에 변소가 지어졌다.
안창호는 메리다를 떠나기 전에 국민회지방회 임원들과 함께 노동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에 따라 농장주와 한인 노동자 간에 새로운 계약을 맺도록 추진했다. 한인들은 신이 났다. 총회장 안창호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안창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안창호는 곽림대가 가지고 온 사진기를 들고 임원들과 한인들의 사진을 찍었다.
1918년 4월 30일. 안창호는 멕시코 화폐로 1만 9천 원이 모이자 떠날 채비를 갖췄다. 5월 초, 안창호와 곽림대 두 사람은 프로그레소에서 베라크루스로 가는 화물여객선을 탔다. 그리고 베라크루스에서 다시 여객선을 타고 툭스판을 거쳐 탐피코에서 하선했다. 1917년 2월, 코앗사코알코스와 탐피코에서 국민회지방회가 중앙총회로 승인을 요청해왔다. 당시 북미총회장 강영소가 가정사 문제로 사직서를 낸 상태라 중앙총회 총무 곽림대가 절차를 검토하고 6월에 총회장의 승인을 받았었다.
곽림대가 안창호에게 탐피코 한인사회의 정황에 대해 말했다.
“탐피코지방회장 김익주 선생은 화가랍니다. 초촐라 농장에 벽화를 그려 유카탄에서 아주 유명해졌답니다.” 곽림대는 황사용으로부터 김익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오, 화가요? 벽화를 그렸다고? 참으로 훌륭하오. 그림이 고된 노동의 위안이 되었겠구려.”
“그런 분이라 사업에 성공하시지 않았을까요? 격물치지 정신. 묵묵히 벽화 그리기로 자기 수련을 한 셈이니. 돈을 많이 모았다는데요?” 곽림대가 말했다.
“2층 한옥 건물을 짓고 식당을 경영한다고 했지요?” 안창호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탐피코로 이주하기 전에는 코앗사코알코스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다는데. 부인이 제주 해녀 출신이랍니다.”
“한인들의 모범이 될 테니, 흥사단도 조직하라고 부탁을 해야겠소. 회관은 식당 건물이 있으니 걱정 없구려.” 안창호가 기대감에 차서 말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탐피코 해안 습지와 풀로 뒤덮인 길을 걸으며 주택가 2층 건물을 찾아갔다.
곽림대가 소리쳤다. “총회장님, 저기, 저기를 보세요! 2층 한옥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네요.”
“오, 다 온 것 같소. 저 건물인가 보오.”
“메리다에서 연락이 온 모양입니다. 총회장님이 탐피코로 오신다고.”
한인들은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연호를 외쳤다. “그란 마에스트로!”
환영인파는 족히 200명이 넘었다. 안창호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대로 있으라고 손짓하고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축제 분위기였다.
건물 주인 김익주는 안창호 방문을 반겼다. 안창호는 탐피코에 국민회지방회를 설치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총회장 안창호는 즉석연설을 통해 한인들을 위로했다.
안창호는 일본이 유럽 대전 연합국들과 손을 잡고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주와 연해주의 동포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국내의 암담한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우리가 나라 없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지만, 당당하게 고향으로 가기 위해 나라를 반드시 되찾자고 했다. 그러려면 서로 단결하고 돈을 모으고 교육을 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안창호는 주먹을 치켜들며 외쳤다. “여러분과 북미 한인은 이미 하나입니다! 국민회중앙총회와 북미실업주식회사 그리고 흥사단이 여러분을 힘껏 도울 것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익주는 환영 인사말에서 이 여세를 몰아 독립자금을 같이 모으자고 호소했다. 김익주는 이후 1919년 탐피코국민회 파출위원으로 선임되어 독립의연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를 후원했다. 또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고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7월이 다가오자 안창호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렀다. 김익주는 탐피코에서 몬테레이로 가는 철도를 안내했다. 몬테레이. 미국국경이 그리 멀지 않은 곳. 미국을 오갈 수 있는 교통로가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안창호는 미국과 가까운 거리의 기지탐색을 겸해서 몬테레이를 거쳐 멕시코시티로 여정을 잡았다. ‘가능하면 멕시코 이민자들이 미국과 왕래하기 쉬운 곳’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몬테레이와 같이 철도가 발달한 곳은 산업도 발달해 있었다. 제련소, 중공업, 조립, 광석가공 등. 그뿐만이 아니라 맥주, 담배, 도자기, 유리, 직물 등 경공업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일자리도 많을 것이다.’ 안창호는 생각했다. ‘북미회사 자본이 커지면 이곳에 투자할 방도도 연구해야겠다. 우리나라도 빨리 광복되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세계는 넓고 개발은 무한하다. 힘을 길러야 한다.’ 안창호는 몬테레이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화물 여객 열차를 탔다. 시간이 꽤 걸리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곽림대가 동행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다시 치통이 시작되었다. 이가 욱신거렸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시티 국민회관에 도착한 안창호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작별연설을 했다.
“비록 지금은 한인이 전 세계로 흩어져 난민 신세로 살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민족이다. 역사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나라 사랑과 주인 정신으로 무장하여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민족혼을 되살리자. 멕시코 한인들은 행동을 일치하고 의무적으로 국민교육을 받게 하자. 역사와 국어를 가르치자. 자본을 투자하여 상업과 농업을 확장하자. 멕시코와 북미와 중앙총회는 단결하여 서로 돕고 독립에 대비하자. 대한인국민회중앙총회가 멕시코 여러분을 도울 것이다. 메리다지방회에 멕시코연합지방총회를 설치하자.”
총회장 안창호는 멕시코시티를 떠나 과달라하라에 있는 미국 영사관으로 갔다. 미국 영사의 인준장이 없어도 미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안창호는 멕시코국민회 지방회관을 거점으로 삼아 숙식을 하고 이민자들을 만났다. 멕시코시티지방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메리다지방회, 프론테라지방회, 탐피코지방회. 메리다에 멕시코국민회지방총회를 설치하고, 흥사단을 조직하여 흥사단 수련방법을 지도했다. 또 동맹저축을 독려하고 255명분의 북미실업 주식청약금을 모았다.
안창호는 또한 남쪽 과테말라 국경에 인접한 프론테라와 북쪽 미국국경 노갈레스를 방문하고 기지 개척을 위한 토지를 답사했다. 멕시코와 미주의 한인 청년들이 마음 놓고 공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비행학교 설립을 꿈꾸며, 교통편 ‧ 농업 ‧ 어업 ‧ 상업 ‧ 공업 등 지역의 환경과 여건을 꼼꼼하게 살폈다.
안창호는 콜리마로 가서 만사니요항에서 배를 타고 마사틀란으로 갔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토지 형편을 살핀 뒤 다시 철도를 이용해 멕시코 북서부 소노라주의 에르모시요로 갔다. 안창호는 에르모시요에서도 멕시코 한인의 이주와 투자 여건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 미국국경 노갈레스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10개월 동안의 대장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앙총회장 안창호는 멕시코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8월 29일 업무에 복귀했다.
(8화 마침.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