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힘은 건전한 인격과 공고한 단결에서 #7/10

7화. 멕시코 순방, 에네캔 농장 체험

by 은명

7화. 멕시코 순방, 에네캔 농장 체험


1917년 10월 12일,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 여객 터미널에서 황사용을 만나 여객선 ‘산호세’를 타고 멕시코로 향했다.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태평양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황사용은 특유의 침착하고 호소력이 있는 낮은 목소리로 1909년에 그가 겪었던 멕시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때 정재관 국민회 총회장을 밀산으로 파견하기로 하고, 제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마침 박영순 형님이 멕시코 이민 참상을 전해왔습니다. 얼마 후 메리다에서 이근영 씨가 이제 곧 4년간의 노예노동에서 풀려나 곧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자신들의 생존문제를 의논해 왔습니다. 국민회는 일단 방화중과 저를 멕시코로 파견했지요.”

안창호는 박영순을 생각했다. “박영순은 전 세계 한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인삼을 팔러 다녔지. 멕시코 사정을 그래서 알게 된 것이군.”

“방화중과 저는 1909년 4월 3일 LA에서 철도로 엘페소 국경을 넘고, 멕시코 내륙 치와와로 해서 멕시코시티를 거쳐 베라쿠르스로 이동했습니다. 나름 대장정이었습니다.” 황사용이 말했다.

“멕시코는 영토 대부분을 미국에 할양했다지요?” 안창호가 물었다.

“멕시코는 주요 산유국이라 제국들이 탐을 냈지요. 미국 잔재를 청산하려고 개혁을 외치고 있으나 사회 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금세기 들어서는 민족혁명당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나 봅니다.”

안창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회 혼란이라.... 한인의 생존이 걱정되는구려.”

“그렇습니다. 우리는 베라크루스에서 동포 8명을 방문하고, 프로그레소를 거쳐 메리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근영, 신광희, 방경일 씨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제국군인 출신들입니다. 1년 남짓 남은 계약된 잔여금을 미리 지불하고 농장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신광희는 지난번에 흥사단에 가입한 동지지요?” 안창호는 신광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광희(1879~?)는 경상북도 문경 출신으로 제국군인 하사관을 지냈다. 신광희는 1915년 6월 23일 안창호 중앙총회장 취임식 때 참석하고, 안창호의 입단 문답을 받았다.

“맞습니다. 저는 그들로부터 용기를 얻어 국민회를 소개하고, 지방회를 결성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계약만료 3일 전에 메리다지방회를 창립한 것이죠. 창립대회는 농장 16곳의 노동자 대표들과 회원으로 가입한 314명이 참석했고요. 정말 이들이 얼마나 갈급해 있던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눈물이 납니다.” 황사용은 울컥했다.

안창호도 따라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나라가 그리웠을까?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고통은 나라 없는 절망과 외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박용만 동지 말대로 비참한 이들을 하와이로 이주시킬 생각도 했었던 것이군요. 미 상공부장관과 회담까지 열었던 수고가 헛된 일이 되어 안타깝소.”

황사용이 말했다. “이미 엉뚱하게 뿌려진 씨앗입니다. 멕시코로 뿌려진 이민자들은 스스로 힘을 길러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안창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1520년 전후로 400년간 스페인 지배를 받았던 멕시코는 본래의 아즈텍 문명이 파괴되고 스페인이 심은 천주교가 종교의 뿌리가 되었지.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영국의 자본이 라틴아메리카를 점령하였으니 반외세 정서가 깊어졌을 것이오. 게다가 한인들은 멕시코가 보호해 줄 대상도 아니었을 테고.” 안창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번에 이들을 만나면 민족의 정체성, 민족혼을 심어줘야겠소.”

“오, 형님! 흥사단 이념, 흥사단이 추구하는 정신을 이곳에 심어준다면 종교나 그 어떤 이념보다 더 힘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안창호는 황사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렇게 생각하오?”

“흥사단 이념은 종교나 정치 이념을 초월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 아우님은 진정한 흥사단 사람이오. 하하.”


안창호는 항해 9일 동안 황사용으로부터 멕시코 한인 이민사와 지리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황사용은 메리다국민회를 창설한 장본인답게 현지 사정과 역사를 꿰고 있었다.

멕시코 이민은 일제의 조직적인 계략에 의해 1,033명이 불법으로 팔려간 이른바 노예이민이다. 영국인 마이어스와 일본인 히타나가 야합한 작품이다. 마이어스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주의 영국인 대리인이고 히타나는 일본 이민회사인 대륙식민합자회사의 부사장이었다. 이들은 서울에 출장소를 차리고 멕시코 이민자 모집에 나섰다. 이들의 불법 계약서에는 모집과 수송은 일본 회사가 책임지고, 모든 비용은 멕시코 고용주 측에서 부담한다고 되어있었다. 고용주는 이민자 한 가족당 파운드화로 4파운드, 독신자는 1파운드씩을 일본 회사에 대행 수수료로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민자들이 4년 동안 본인의 노동으로 직접 이민 대행 수수료를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한국 이민자들은 일본 회사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거나, 꾐과 납치 등으로 서울과 인천, 부산 등지에서 모집되었다. 대부분이 근근이 살아가던 평민들이었고, 200여 명의 제국군인 출신과 전직 관리 그리고 이종오와 같은 왕족 출신도 이민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1905년 4월 4일 제물포를 출발했다. 40여 일의 태평양 항해 끝에 5월 13일 태평양 연안의 멕시코 살리나크루스에 도착했고, 곧바로 기차를 타고 멕시코만에 면한 코앗사코알코스로 이동했다. 거기서 다시 선편으로 멕시코만 유카탄반도 프로그레소에 최종 도착하여 하선했다. 프로그레소는 에네켄 수출 항이다. 이민자들은 다시 기차로 메리다에 도착하여 유카탄반도 주변 22개의 에네켄 농장에 20명, 30명, 45명 등의 단위로 분산 배치되었다.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원료이다. 이민자들은 섭씨 45도 불볕더위에 토굴 같은 초막에서 기숙하며 12시간 이상 야만적인 노동을 했다. 맨손으로 가시 박힌 선인장 잎을 수확하는 비참한 노예노동이었다. 가혹한 채찍질과 물 부족, 저질 음식 때문에 자살하는 여인들도 많았다.

1909년, 4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부당한 극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이들이 살아가야 할 멕시코 사회는 반미, 반외세 자본을 벗어나기 위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노예계약에서 풀려난 한인들은 멕시코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러는 농장으로 또는 일자리가 있는 항만 주변이나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마구잡이로 살아갔다. 혼혈이 증가하고 모국어도 없었다. 한인의 정체성은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황사용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창호의 마음은 무거웠다. ‘나라 없는 설움이 오죽했을까? 이들은 너무나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일본의 간교함과 대한제국의 부패와 무책임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안창호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떻게 왕족과 군인들이 합류하게 되었을까요? 혹, 고종께서 왕족 이종오를 전직 관리들과 광무군인들을 위해 상징적 인물로 파견한 것은 아닐까요? 제국군인들이 200명이나 된다고 했소? 많은 숫자요.”

“네에? 그렇군요...!” 황사용은 그때 이종오 선생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저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평범한 이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안창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처음에 우리는 노예노동 참상에 놀라고 이들을 구호할 생각만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1033명의 구성은 예사롭지 않소. 간계에 속아서 정책 결정을 내렸건 아니건 분명히 이종오 선생께 내린 고종 황제의 밀명이 있었을 것이오. 꿈과 함께...!”

황사용은 안창호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그렇다면 형님은 당시 고종이 무엇을 꿈꾸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음, 이건 그저 내 생각이오. 당시 고종은 절망 속에 빠져있었소. 위기 해법 가운데 헤이그 만국회의 밀사 파견도 있었지만, 아세아에서 머나먼 이국땅에 신한국을 건설해 볼 의지도 있었던 것이오. 1033명의 인적 구성은 작은 신국을 만들어 가는 기본 요소를 갖춘 셈이오. 이종오 선생과 200명의 광무군인들. 그리고 관리들...!”

안창호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타국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꿈은 나의 이상촌을 향한 꿈과 닮았다. 하하.’

“형님, 정말 그럴듯합니다. 메리다에서 이종오 선생을 만나 꼭 확인을 해 보시지요. 궁금합니다.” 황사용은 왠지 안창호의 생각이 맞을 것만 같았다.

“모든 일은 기초부터 쌓아야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거요. 사람과 관련된 사업이나 큰일이 계획대로 성사되려면 역시 기초훈련부터 해야 하오. 더디게 간다 해도 말이오. 세월이 걸려도 점진적으로...!” 안창호는 혼잣말처럼 말끝을 흐렸다.


안창호와 황사용 두 사람은 10월 21일, 멕시코 만사니요항에 도착해서 철도로 멕시코시티(묵경)로 이동했다.

“이 보오, 황 동지. 순방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봅시다.”

“네, 형님.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민회부터 방문해야죠. 변동 사항이 없다면 6일 후 도착합니다. 1912년 중앙총회 설립으로 한창 바쁠 때 묵경국민회는 10월, 이근영 씨 주도로 설립되었습니다.”

“음, 에네켄 농장에서 해방된 이들이 멕시코시티로 많이 왔다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자유로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많이 왔지요.”

“연설 준비를 해야겠소. 그나저나 메리다로 가려면 해가 바뀔 것 같소. 올해는 푸에블라, 와하케뇨 등 에네켄 농장이 있는 내륙지방으로 흩어진 동포들을 찾아 다녀봅시다.”

“좋습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여정이라 멕시코만과 유카탄반도 메리다는 내년 초에 방문한다고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하여 9일 만에 태평양 연안 만사니요항에 10월 21일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인사회는 술렁였다.

“그란 마에스트로(Gran, Maestro)! 위대한 스승 도산 안창호가 멕시코를 방문했다!” 멕시코시티에서 환영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한인들은 10월 27~28일 국민회 사무소에서 환영회를 개최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참석했다. 안창호는 환영회장에서 특유의 호소력을 발휘하며 연설했다. 동포들은 숨죽여 경청했다.

“그동안 여러분은 머나먼 이곳까지 살길을 찾아왔으나 노예나 금수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죽을 고생을 하였소.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10년 세월을 넘겼소. 한때 만주와 요서를 호령하던 역사 민족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물론 고위 관료층 탓이 큽니다. 그러나 잘못되어 가는 것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또 누구 탓이오? 백성의 무지. 그렇습니다. 바로 백성인 ‘내 탓’입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이 틈새를 엿보다가 침략했고 그 무력의 힘이 너무 강해서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소. 여러분은 살길이 막막하니 어떻게든 살아 보려 했고, 왜놈과 영국놈의 농간과 감언이설에 속아 태평양을 건넜던 것이오. 도착해 보니 결과는 어땠소? 지금은 여러분 사정이 나아진 것입니까? 나의 무지는 내 탓입니다. 그러니 지력을 키워야 합니다. 지력은 힘을 갖게 하는 위대한 자본입니다. 지력의 자본 못지않게 신용의 자본도 중요합니다. 신용이 떨어졌다 함은 무슨 말입니까?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자업자득인 셈이지요. 에네켄 농장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머리를 쓰고 지혜롭고 신용이 있게 일을 했습니까? 아무리 농장 업주가 말이 안 통하는 폭군이라 하더라도 성실하고 근면한 일꾼을 내친단 말입니까? 나도 곧 에네켄 농장으로 가서 일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나도 노동자입니다. 틈틈이 미국 농장에서 돈을 벌었습니다. 일은 신용의 문제입니다. 지식의 힘, 신용의 힘, 그리고 또 하나 금전의 힘. 이 3가지는 개인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 위대한 힘입니다. 그 힘은 개인의 건전한 인격에서 나와 단결로 꽃을 피웁니다. 건전인격과 신성단결. 이것이 바로 우리 이민자들의 힘입니다. 힘은 하나로 뭉칠 때 힘입니다. 서로 어려울 때 돕고 동맹하여 개인의 힘을 기르고 나아가 나라를 되찾는 일처럼 위대한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박수와 동시에 "그란 마에스트로!"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포들은 총회장 안창호의 연설에 감동했다.

묵경지방회 동지들은 안창호에게 멕시코시티에 더 머물러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안창호는 도시를 떠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푸에블라, 와하케뇨, 프론테라 등 내륙지방 시골 농장들을 순회하겠다고 했다. 황사용은 남아서 국민회 동지들과 교류하고 이제 막 조직된 코앗사코알코스국민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1918년 1월 초에 메리다국민회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안창호는 푸에블라까지 청년 동지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안창호는 실제로 거의 두 달 정도 동포들과 함께 같은 일을 하면서 순회 계몽 길에 나섰다. 멕시코는 4계절이 따로 없다. 따라서 에네켄 수확도 계절이 따로 없었다. 안창호는 30명 단위의 한인이 살고 있다는 멕시코 중남부 내륙지방에 있는 에네켄 농장을 찾아갔다. 안내자 청년은 밭에 독사나 전갈 같은 독성이 있는 벌레들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안창호는 한인들이 일하는 현장으로 가면 언제나 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똑같은 차림에 똑같은 낫(마체테)을 들고 나타나 일을 했다. 누가 봐도 동료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그들에겐 다만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안창호는 꾀부리지 않고 솔선수범했다. 옆에서 일하던 사람이 안창호를 눈여겨보았다. 그러다 한나절이 지나자 비로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소? 조선사람이오?”

“나요? 조선사람은 맞는데 미국에서 왔소.”

“미국? 미국은 천국이라고 들었는데 어찌 이렇게 험한 데로 왔소?”

“나라가 망해서 갈 데가 없는데 미국이면 대수요? 나라를 찾아야지.”

그가 잠시 일손을 놓고 말했다. “나라를 찾아 무엇하리오. 나라가 있었어도 고달팠는데. 오죽해야 태평양을 건넜겠소? 하와이로 가는 줄 알고 이민선을 탔던 건데.”

“그래도 나라는 찾아야지. 내가 찾는 수밖에. 힘을 기르고 돈을 벌어야지.”

안창호는 노래를 읊조리듯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상대방이 물끄러미 안창호를 바라보았다. 안창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돈은 벌어 무엇하겠소. 그냥 연명하는 거지. 하루 벌이로 제대로 먹을 수나 있다면 좋겠소. 그런데 당신은 뭐하던 사람이오? 인상이 막일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안창호는 쉬지 않고 낫질을 하면서 무심히 말했다. “나라도 없는데 내 입맛에 맞는 고상한 일이 있겠소? 돈을 준다면 닥치는 대로 해야지.”

“.......”

안창호는 말벗의 얼굴을 살폈다. 나이는 비슷해 보였고 눈빛은 선했다. “부인은 같이 있소? 아이들도 있소?”

“부인은 농장에 없고 시내에서 잡일을 하고 있소. 아들 하나 있는데 저기 저쪽에서 일하고 있소.” 안창호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곧 알게 되겠지.’

“오늘 왔소? 그럼 이따 해지면 내 파하(초가)로 갑시다. 잠은 자야지.”

“오, 고맙소. 그러지 않아도 어디서 잘까 걱정했는데.”

“참, 형씨 이름은 뭐요?”

“내 이름은 안씨, 광택이오.” 안광택은 연해주에서 썼던 이름이다.

안창호는 이렇게 해서 친구를 사귀었다. 며칠 후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안창호는 지도자의 보따리를 쉽게 풀지 않았다. ‘적어도 열흘. 믿음을 주고 신용을 쌓으려면 그들과 같이 숨 쉬며 지내야 한다.’ 다음 날부터 그 친구는 노동 현장에서 안창호의 보호자이자 절친이 되었다.

안창호는 에네켄을 낫으로 베어내는 작업에 익숙해졌다. 일할 시간에는 일만 했다. 어느새 친해진 동료들이 슬쩍슬쩍 다가와 대충하라고 하면서 요령까지 알려 주었다. 안창호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묵묵히 작업에 열중했다. 어저귀 잎을 크기대로 분류하고 50여 개씩 묶어 다발을 만드는 일은 주로 안창호가 했다.

하루는 농장주가 수확한 다발을 검사하더니 잘했다고 칭찬했다. 일당을 좀 더 쳐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덩달아 기뻐하면서 안창호처럼 일했다. 만족도가 높아진 주인도 기뻐했다. 안창호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안창호는 동료들이 모인 가운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여러분, 나도 일전 한 푼 없이 마누라 데리고 미국 유학을 왔다가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오렌지 농장에서 일했소. 그리고 동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했소. 나는 거기 책임자입니다. 또 북미실업주식회사를 만들었소. 큰 이익이 쌓이면 그 큰돈으로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기지를 마련해 그곳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독립군을 양성해서 왜놈에게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힘이 생기고 행복할 거 아니오? 여러분이 이렇게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는 길은 일본과 독립전쟁을 해서 나라다운 나라를 새로 일으키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단결하면 힘이 생길 것입니다. 일본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침략은 절대로 제풀에 오래 못갑니다. 우리가 바보 국민입니까? 독사에 물리고 전갈에 물려가면서 이 험한 일을 언제까지 할 겁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가시투성이 어저귀 한 단을 정성껏 묶어내니 일당이 늘어나고 신용이 늘어나 보람도 생기는 것 아닙니까?”

탄식과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창호는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여기를 떠나 다른 농장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여러분이 속아서 도착했던 유카탄 메리다로 갑니다. 동포들이 너무나 보고 싶군요. 여러분, 멕시코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입니다. 나는 내일 농장주를 만나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을 올려 줄 것을 협상하고 떠나겠습니다. 단결합시다.”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안창호도 눈물을 닦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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