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5 (상)
5화. 이광수와 여운형 (상)
5화. 이광수와 여운형 (상)
환영식장에서 약속한 대로 5월 그믐께 이광수가 정인과를 동행하여 병원으로 찾아왔다.
“두 분이 어떻게 같이 들어 오시오? 이미 서로 만났던 게요?” 안창호가 물었다.
정인과가 먼저 대답했다. “네. 환영식장에서 이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도산과 면담을 한다기에. 제가 모시고 온 셈이죠. 하하.”
이광수가 말했다. “선생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전 동경에서부터 이미 선생님의 명성을 알고 쭉 동경해 왔습니다.”
“부끄럽소. 그 이후 10년 넘게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오.” 안창호가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그 정신을 저희가 계승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광수가 공손하게 말했다.
안창호가 마치 기억을 더듬듯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그대의 문학과 필력을 대단히 존경하오. 어릴 때부터 이미 문학에 신통력을 발휘했다지요? 미주 홍언 동지가 『신한민보』 주필로 초청했다가 유럽 대전으로 불발되었다기에 나도 실망이 컸었다오. 그때 치타에 있는 이강을 통해 미국행 여비까지 보내려다가 무산되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후 이강이 말하길, 그대가 『대한인정교보』 편집을 거의 도맡아 했다고 합디다.”
두 사람의 만남을 잠시 관망하던 정인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
안창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나보고 내무총장에 취임해 달라고 하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떻소? 내가 몇 분께는 꼭 묻고 싶다오. 여기 정 동지도 알다시피 내가 내무총장이 된 것은 홍콩에 도착해서 알았다오. 그 말은 취임하려고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
정인과가 이광수를 보고 이야기했다. “그렇소. 미주국민회총회 때 도산께서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흥사단 조직과 같은 인재양성 기관을 따로 두고 임시정부를 뒤에서 후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주에서처럼 실업 기관을 확장해서 경제 자본을 일으키고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태평양을 건너신 것으로 압니다.”
이광수가 입을 열었다. “상해는 청년 그룹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3.1운동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래도 세계 외교전이 주 관심인 듯합니다. 이미 선배들이 있는 만주 무장세력의 결집과는 달리, 청년들은 세계정세와 맥을 같이 해야 하는 이때 선배님들의 명령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고기관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죠.”
안창호가 이광수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요는, ‘최고기관으로 우리는 정부 조직을 택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여전히 정당조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총장 자리로 결집을 안 하고 있는가?’ 그런 것이오?”
“예, 그렇습니다....” 이광수가 말끝을 흐렸다.
“그대는 임시정부가 무슨 일부터 해야 한다고 보오? 중요한 사안은 임시의정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는데.” 안창호가 다시 물었다.
이광수는 대답 대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저분은 답을 알고 있다. 아마도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실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무총장 부임의 명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인과가 안창호의 뜻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대신 말했다. “도산께서 이왕에 국무총리 대리로 취임하셔서 계획에 있는 일들을 추진해 나가시지요. 입법기구 통합과 동시에 정부 조직 통합. 그다음에 국내외 비밀행정기구 설치, 신문발행, 외교문서 한일관계 사료편찬, 교민단 2세 교육기관 설치 등.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저희에게 말씀하셨지요. 모든 일은 일꾼이 중요하다고. 내무총장 자리에서 무실역행의 청사진대로 명령 체계를 갖추고 추진하시면 통합 촉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도산께서는 늘 기획에 앞장서고 후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권한을 위임해 오셨으니 말입니다.”
안창호는 정인과를 쳐다보았다. “정인과 동지 말이 맞소. 나는 일꾼을 찾으러 상해에 온 것이오. 흥사단. 흥사단을 일으켜 정부나 정당 요직에 파견할 계획이었소. 지금도 그 계획에는 변함이 없소. 내 세대는 이제 곧 지나가오. 다음 세대에는 반드시 독립을 이루어야지. 안 그렇소?”
이광수는 ‘흥사단’을 조직하러 왔다는 안창호의 말에 흠칫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몇몇이 흥사단이 조직되었다고 말했었다. 자세히는 모른다. 신한청년당 같은 조직은 아닐 것이고, 신민회의 청년학우회 같은 조직일까? 도산은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의 소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창호가 생각에 몰두해 있는 이광수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상해에서 흥사단을 일으킨다면 같이 해주겠소? 여기 정인과 동지는 이미 흥사단을 발기한 동지라오.”
이광수는 왠지 즉답하기가 어려웠다.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맙소. 중국에서는 처음 제안하는 것이라오. 하하.” 안창호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선생님, 일전에 그일 말씀인데요,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 창간이나 『한일관계사료집』 일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한청년당 간부들 간에 3.1독립선언서 외에 국제사회에 어떤 문건을 제출해야 할지 토론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의 침략 역사를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광수가 말했다.
“오, 그래요? 고맙소. 실은 나도 김규식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문건을 생각한 바 있다오. 일본 침략사를 낱낱이 고발하는 한일관계 역사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소. 그리고 그 일은 그대가 적임자라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오.”
안창호는 이광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자진해서 일을 맡겠다고 나서준 믿음직한 일꾼이 아닌가. 안창호는 말을 계속했다.
“내무총장 취임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그 일은 꼭 해야겠소. 중국 5.4운동을 보시오. 청년들이 혁명사상을 어떻게 키웠겠소? 손문, 노신, 진독수의 저술들 그리고 신문과 잡지의 위대함이지 않소? 호소력 있는 문장력과 날카로운 정세분석. 인민을 폭넓게 아우르는 휴머니즘. 그래서 나는 톨스토이를 존경한다오. 하지만 이 병실에서는 노신의 『광인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하하.”
정인과와 이광수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산은 독서광이다. 저 해박한 지식은 모두 책에서 빚어져 나온 것이다.’
이틀 후 오전, 여운형이 여운홍을 데리고 나타났다. 두 형제는 경기도 양평 대지주의 아들들이었고, 선우혁의 말을 빌리자면 두 사람은 이름난 천재들이었다. 양친과 조부가 모두 돌아가신 후 기독교에 입교했고, 노비 문서를 태운 뒤 자유롭게 사회개혁에 헌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1907년 안창호 연설에 감동하여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 고향에 광동학교를 설립했다. 1908년 양평국채보상단연동맹을 조직하고 순회연설을 시작했다. 여운형은 동생을 구세학당에 입학시키고 자신은 평양장로신학교에 입학했다. 1913년 유학을 결심하고 동생은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일단 중국으로 건너왔다. 여운형은 서간도 일대를 답사하고 금릉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졸업했을 때 나이가 28세였다. 중국어와 영어를 잘하고 친화력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중국의 진보적인 청년들과 교류를 도맡아 했다. 신한청년당은 여운형의 걸작품이었다.
“어서들 오시오. 그대가 무척 보고 싶었다오.” 안창호는 여운형과 악수했다.
“선생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키워준 사람입니다.” 여운형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었다.
안창호는 유쾌하게 말했다. “당치 않소. 이제부터는 그대가 나를 키워줘야 할 것이오. 하하.”
곁에 있던 여운홍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미주에서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 경황없이 돌아가는 역사적 상황에 맞닥뜨려있는 것이니, 그런 인사는 당치 않소. 운홍 동지는 곧 파리로 가봐야 하지 않소? 유럽 정세를 살피고 모스크바 정세도 살펴야 할테니...” 안창호가 말했다.
“계획을 다 알고 계시는군요. 파리강화회의 의제는 6월 말로 종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로 생길 국제연맹에 대응하는 외교전은 계속돼야 하니까요. 게다가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코민테른의 동향도 살펴야 하고요.” 여운형이 말했다.
“의정원에서 조소앙과 여운홍 동지를 파리통신부로 파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오. 김규식 총장을 지원해야지. 그대 아호가 몽양이라고 했소? 어머니께서, 아니면 그대가 태양을 품는 꿈을 꾸셨던 게요? 하하. 이렇게 만나니 해방된 조국의 태양이 그대 두 눈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 같소. 하하.” 안창호는 여운형을 보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친밀함을 느꼈다.
“관상도 보시나요?” 여운형도 도산을 격의 없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유쾌했다. ‘도산은 이렇게 편한 분이시다. 기대고 싶은 큰 형님.’
안창호는 김규식의 편지를 통해서 청년지도자 여운형에게 이미 반해 있었다.
“농으로 듣지 마오. 떡잎이란 게 있지 않소? 겨우내 얼었던 밭에서 힘차게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 혹시 옥수수 새싹의 생김을 아오? 유난히 키가 크고 잘생긴 연녹색 떡잎이 쭉쭉 위로 크는 모습에 한인 동포들이 ‘만나’처럼 감사하며 즐겨 심었다오. 조선의 꽁꽁 얼어붙은 밭이 청년들로 인해 겨울을 헤치고 싹을 틔우고 있소. 하하. 내가 너무 감상에 젖었나? 그대의 지도력에 감동해서 그러오. 3.1운동 기획은 정말 최고라오!”
“아, 역시 선생님은 시인이십니다. 거국가도 그렇고. 그러니 대중들이 선생님 연설에 빠져들 수밖에요. 선생님 연설을 들으면 깊이 생각하게 되고 되새기게 됩니다. 마음이 선해지고, 왠지 힘이 나고... 늘 그랬습니다.” 여운형은 옛날 삼선평에서 도산의 연설을 듣고 희망을 보았고,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치겠노라 위안했던 일을 추억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소? 내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오?” 안창호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선생님은 독립운동의 청사진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미주 국민회를 이끌듯 저희도 지도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주변국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어 상해임시정부의 운명을 저희가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어른들께서 단합을 해주셔야 하는데.... 솔직히 외교만 가지고는 정부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정말 조선이 위임통치되거나 일본 자치정부로 전락하면 어떻게 한답니까? 피를 더 흘려야 하나요?” 여운형은 진심으로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음, 중국 정세는 어떻소?” 안창호가 진지하게 물었다.
“준비 없는 근대혁명이었지요. 위로부터의 혁명이 갖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랬습니다. 청조를 무너뜨리고 민국을 수립한 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근대적인 변화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동안 성장한 청년들이 보리 새싹처럼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3.1운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운형도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하, 자네는 보리 새싹이오? 하하. 좋습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요. 돌보고 김을 매줘야 하는 옥수수 새싹이 아니라서 더 진보적이오. 보리 새싹의 생명력은 밟힐수록 일어나는 자생력이지. 하하.” 안창호의 말에 여운형과 여운홍은 크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고향의 땅, 대한의 땅을 그리워하는가 보오!” 안창호가 말했다.
- (하)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