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소 #4 (하)
[도산 안창호, 사랑을 담다]
4화. 반가운 얼굴들 (하)
이탁 일행이 돌아가고 난 오후. 병실에 햇살이 가득했다. 그 햇살을 머금고 김창세가 들어왔다. “형님, 혈압을 재보려고요.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렇소. 제자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 벅찬 일일 줄이야. 내가 정말 교사를 꾸준히 했어야만 했는데....” 안창호는 애국가를 목청껏 불렀던 대성학교 교실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김창세는 안창호의 오른팔에 혈압 측정기를 감싸면서 말했다. “형님 주변 사람들이 다 제자 아니던가요? 형님은 대한의 스승, 겨레의 사표이십니다.”
“오, 그대도 그런 농을 다 하는구먼! 그렇지 않소. 스승과 제자는 교단을 매개로 맺어지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지. 그냥 일상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또 다르다오. 김 의사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듣소? 아니지 않소, 하하. 혜련의 아이들도 그렇다오. 자기들 고집대로 막무가내일 때가 많지. 오히려 가까이 사는 홍언 동지 말은 아주 잘 듣더란 말이지.”
안창호는 수산과 수라를 생각했다.
“저도 아들 두 놈 일상 교육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정실이가 잘 키웁니다.”
김창세도 피터와 데이비드를 생각했다. 피터는 안창호의 둘째 필선과 동갑이고 데이비드는 이제 3살이었다.
“오, 아이들이 보고 싶소. 처제도.” 안창호가 다정하게 말했다.
“정실이가 인사 온다는 것을 말렸습니다. 좀 더 있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김창세는 아내 정실이 형부를 면회하겠다고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렸었다.
“정실이 처제가 참 똑똑했지. 그때 이화여전을 포기한 일이 아깝소. 내가 장인어른께 여성도 신식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떼를 써놓고. 참 벌써 옛날이야기군.” 안창호는 장인한테 여성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떼를 썼던 그때를 잠시 추억했다.
“형님, 혈압은 괜찮습니다.”
“식구들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더 공부할 생각은 없소? 공중위생학은 근대화에 꼭 필요한 학문인데. 나라를 위해서 말이지.” 안창호가 김창세의 의중을 떠보았다.
김창세가 이번에는 청진기로 안창호의 가슴과 복부를 진단하면서 말했다.
“생각은 있지만, 지금은 형편이 아닙니다. 내년쯤 재림교단 대총회가 열릴 때 연수 장학금을 신청해 볼 작정이긴 합니다.”
“오, 그렇군. 내가 도울 테니 계획을 저버리진 마오. 나야 학업은 포기했지만, 누구든 공부한다는 일은 내가 적극 지지한다오.”
“지금은 독립운동 시기가 아닙니까. 형님을 돕는 일이 제가 독립운동하는 길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건강 지키는 일이 제 사명인 듯합니다. 하하.”
김창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맙소. 그러면 때가 올 때까지 나를 도와주오. 임시정부 산하에 대한적십자사를 설치해서 간호사양성소를 운영하면 좋을 텐데.” 안창호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럼 형님께서는 임시정부로 취임하시는 겁니까?” 김창세는 궁금했다.
“처음에는 사양했지. 내가 자리를 탐하는 사람은 아니잖소. 할 일이 많은데, 직임을 맡게 되면 제한이 많을 테니 그래서 망설였다오. 그런데 제자가 오고, 옛 동지가 찾아오고. 그들을 만나니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한 듯하여 지금은 취임 후에 무엇부터 해야 할까 생각 중이라오.” 안창호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오, 형님, 잘하셨습니다. 젊은 동지들은 대환영일 것입니다.” 김창세는 마치 바라던 일이라는 듯 좋아했다.
“하지만 인재들을 더 만나봐야 할 것 같소. 여운형과 이광수에게 연통했지. 그들의 생각과 임하는 자세를 보고 판단할까 한다오.” 안창호가 이름을 거명하자 김창세도 이들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여운형. 그분이 3.1운동을 기획한 셈이지요. 그리고 이광수. 워낙 필력도 뛰어나고 생각도 진지해서 주변에서 다들 호평입니다. 두 사람 모두 역할과 기대가 크죠.” 김창세는 소신을 말했다.
“나도 그렇게 봤다오. 그래서 여운형에게 외교전략 수립을, 이광수에게 한일관계폭로를 위한 사료편찬을 맡기면 어떨까 하오. 내 말을 따른다는 전제하에. 내가 설득을 해야겠지.” 안창호는 망설임 없이 소신을 드러냈다.
“역시 형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네요. 벌써 인물 등용을 생각하고 계시니. 존경합니다.” 김창세는 감탄했다.
“에이, 왜 이러나. 아직은 빗장을 열지도 않았는걸.”
김창세는 안창호의 건강은 자신이 관리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저는 형님 건강이 걱정입니다. 제가 잘 돌보아 드려야 하는데....”
“고맙소. 내 건강에 무리하지 않으리다.”
안창호는 그날 밤, 잠을 설치고 말았다. 자려고 하면 이석이 속삭이고 김성근 얼굴이 떠올라 누운 채로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뒤척였다. 구국모험단. 폭탄제조 기술자 양성. 대한청년단연합회. 안병찬, 김승학, 이탁, 오동진. 서로군정서. 신흥무관학교. 독립전쟁. 무력활동. … 통합된 명령 체계. 참모들의 의견 통일. 남만 광복군사령부 설치. 대한적십자회 재건. ‘미주를 떠나 중국으로 오니 현안들이 피부로 와닿는다. 대한독립, 피할 수 없는 독립전쟁, 무력활동. 아, 머리가 아프군. 자야 하는데...!’
다음 날 오전. 황진남이 북경 소식을 들고 왔다. 손에는 “21개조를 취소하라. 칭다오를 반환하라. 친일 관료 3인을 파면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인쇄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청년잡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 잡지는 진독수가 1915년에 펴낸 신문화운동 잡지이다.
“그동안 북경까지 돌지는 않았을 테고 어디서 구한 것인가?” 안창호가 잡지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황진남이 대답했다. “신한청년당원입니다.”
“여운형을 만났는가?”
“아직이요. 동생 여운홍을 만났습니다. 형님은 북경에 있답니다. 그래서 도산께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음, ‘21개조 취소와 칭다오 반환’이라. 이 전단을 보니 북경 사태가 예사롭지 않구먼.” 안창호는 중국에 와 있는 것이 실감이 났다.
“네. 일본이 연합국 참전 때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1915년에 원세개 정부에 ‘21개조 요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했답니다. 내용은 ‘독일이 중국에 대해 가진 권한을 일본에 이양한다. 그리고 내몽골 ‧ 남만주 일대 권익과 여순 대련 조차권, 철도권 권리연장, 중국 정부의 군사 재정에 일본 고문관을 초빙하여 중국치안을 공동으로 유지한다.’ 그런 것들입니다. 대전이 끝나니까 중국도 승전국 입장에서 중일 협정 ‘21개조 요구 무효화’를 파리회의에 제시한 것이죠. 그런데 파리회의 열강들은 중국을 무시하고 일본 손을 들어줬답니다.” 황진남이 차분하게 사태를 분석하여 보고했다.
“음, 신해년 혁명 이후 학생들은 『청년잡지』 등을 통해서 근대의식이 성장했고, 신문을 통해 세계정세를 빠르게 알 수 있었겠지. 신문의 역할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소?” 안창호는 『청년잡지』를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말했다.
“네. 북경 신문사들이 파리회의 내용을 낱낱이 보도했다고 합니다.”
“음, 우리가 상해로 오는 동안 파리평화회의와 관련해서 북경에서 청년들의 시위가 있었고, 지금도 일파만파 상해까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창호는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5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3천여 명이 평화 행진을 했답니다.”
“우리의 3.1운동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평화시위였는데... 결국은 일본의 무력 탄압을 받았지.”
“북경 대학생들은 북양군벌 정부의 강경 탄압에 더욱 분노한 것 같습니다.”
“군정부가 대응을 잘못했군. 주적은 일본인데 시위대를 탄압했다니.”
“상해에서는 노동자, 상인들도 분노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파업으로 이어질 것 같답니다.”
“파업이라. 민중의 혁명, 반봉건, 반제국. 근대국가로 가는 몸살이겠지. 5.4운동은 중국 내부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군.” 안창호의 분석에 황진남도 공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한청년당에서는 이번 5.4 중국혁명을 부르주아 시민혁명 과정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나저나 일본의 야망과 치밀함에 치가 떨리오. 그 끝이 어딜지. 우리는 그런 일본을 상대로 단독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하려고 하지 않소? 그것도 남의 나라 상해에서.... 참담하지 않소?” 안창호는 내내 임시정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황진남이 결연하게 대답했다.
“황 동지가 수고를 더해 주시오. 정보가 많이 필요합니다. 대한의 독립운동이 우리끼리 우물 안에서 놀고 있으면 제대로 되겠소? 북경 동지들 생각이 궁금한데....” 안창호는 황진남을 크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교통이야.’
황진남을 보내고 나서 안창호는 진독수의 『청년잡지』를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이내 우리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중국 진보 진영과 교류를 해야 한다. 중국혁명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다음 화에 계속)